MENA 지역 정치 변동의 핵심에 위치한 걸프
안소연(아시아연구소)
2023년 걸프 국가들은 다이나믹한 중동 역내 외 정치 변동의 중심에 있었다. 먼저 올해 초 3월 중국 중재로 타결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동 합의로 사우디와 이란은 단절된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상대국에 대사관은 개설하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중재자가 그동안 중동 정치 분쟁에서 중재 역할을 했던 미국 등과 같은 전통적인 국가가 아닌 중국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와 이란이 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는지에 대한 의문보다 중국이 왜 중재에 나섰는지 그리고 중국 중재 역할이 지니는 함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었다. 중국이 중재하여 중동의 주요 역내 패권 세력인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 합의를 이루었다는 점은 중동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갈등의 실마리를 보이지 못했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는 무엇보다 양국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정치적 불안정을 낮추고 국가의 실리적 이득을 확보하겠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스라엘의 2023년: 사법부 개편과 가자지구 전쟁
황의현(아시아연구소)
2023년 이스라엘은 격변을 겪었다. 지난 2022년 12월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가 구성한 내각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우파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추방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테러를 옹호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타마르 벤그비르(Itamar Ben Gvir)가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안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서안지구의 이스라엘로의 완전한 합병을 주장해온 베짤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재무부 장관이 되었다. 스모트리흐 장관은 또한 서안지구 정착촌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았다. 새롭게 출범한 강경 우파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서안지구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을 합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튀르키예의 2023년 행보 그리고 희망
한하은(아시아연구소)
튀르키예에서 20년 정권을 잡고 있는 친이슬람정당 정의발전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 AKP)과 대통령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2002.07-2014.08; 총리역임, 2014.08-현재; 대통령 재임)은 올해 2월 대지진으로 집권 기간 내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다. 장기 집권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화하려는 에르도안의 마지막 도전인 대선이 바로 5월 14일에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강진 발생 이후 정부의 무능하고 부실한 대응에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서는 듯 했다. 에르도안의 장기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야당은 단일후보를 내는 일에 사력을 다했다.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개 조사기관 중 5개의 기관이 세속주의정당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 CHP)의 클르츠다르오울루(Kılıçdaroğlu)가 에르도안을 앞선다고 발표했지만 평균 지지율이 클르츠다르오울루가 46.2%, 에르도안이 42.6%로 그 차이가 5%가 되지 않아 5월 28일 2차 투표의 가능성을 예상했다. 선거 결과는 에르도안 49.5%, 클르츠다르오울루 44.9%로 에르도안이 이겼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하여 오는 28일 결선 투표가 다시 치러졌다. 3위를 차지한 승리당(Zafer Partisi) 시난 오안(Sinan Oğan)의 5%가 캐스팅 보트가 되었는데 세속주의자 오안은 마지막에 에르도안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2차 투표에서 에르도안이 52.14%를 얻어 47.86%를 얻은 클르츠다르오울루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 2028년까지 재임하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의 밝지만은 않은 내일
한새롬(숙명여자대학교)
상이한 역사, 문화, 경제 규모, 정치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 공유하고 있는 특징은 무엇일까? 이들의 지난 궤적과 2023년을 되돌아볼 때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건강한) 거버넌스의 부재이다. 리비아는 아랍 봉기가 발생한 이후부터 내전, 외부개입 등의 이유로 하나의 정부 만들기에 실패해왔다. 올해 9월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비아 동부 댐 붕괴 사건은 십 여년 간 지속된 정부 부재 상황이 사회에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같은 달 강도 높은 지진으로 인해 최소 3천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모로코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진이 발생하고 첫 정부 고위급 회의가 열린 것은 최소 19시간이 지난 후였다.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던 왕의 귀국 후에야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대책이 마련되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입헌군주국이지만 여전히 절대왕정과 권위주의 통치 요소를 유지하고 있는 모로코의 단면을 보여준다.
2013년부터 독재정권을 공고화 시킨 이집트와 2021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권위주의적 행보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튀니지는 어떠한가? 두 국가가 겪어온 빈곤, 소득 불평등, 실업 등의 사회문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규모 시민봉기로 독재자를 쫓아냈던 두 국가에서 과거와 같은 크기와 강도의 시위는 목격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 우크라이나사태, 그리고 올해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교전과 난민 이슈 등의 “외생적 요인”에 시선이 분산된 것이 국내적 고요함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 고요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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