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은(아시아연구소)

튀르키예에서 20년 정권을 잡고 있는 친이슬람정당 정의발전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 AKP)과 대통령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2002.07-2014.08; 총리역임, 2014.08-현재; 대통령 재임)은 올해 2월 대지진으로 집권 기간 내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다. 장기 집권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화하려는 에르도안의 마지막 도전인 대선이 바로 5월 14일에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강진 발생 이후 정부의 무능하고 부실한 대응에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서는 듯 했다. 에르도안의 장기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야당은 단일후보를 내는 일에 사력을 다했다.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개 조사기관 중 5개의 기관이 세속주의정당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 CHP)의 클르츠다르오울루(Kılıçdaroğlu)가 에르도안을 앞선다고 발표했지만 평균 지지율이 클르츠다르오울루가 46.2%, 에르도안이 42.6%로 그 차이가 5%가 되지 않아 5월 28일 2차 투표의 가능성을 예상했다. 선거 결과는 에르도안 49.5%, 클르츠다르오울루 44.9%로 에르도안이 이겼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하여 오는 28일 결선 투표가 다시 치러졌다. 3위를 차지한 승리당(Zafer Partisi) 시난 오안(Sinan Oğan)의 5%가 캐스팅 보트가 되었는데 세속주의자 오안은 마지막에 에르도안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2차 투표에서 에르도안이 52.14%를 얻어 47.86%를 얻은 클르츠다르오울루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 2028년까지 재임하게 되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유럽과 중동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었다. 나토연합에서 튀르키예의 역할, 미국과의 관계,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의 외교 정책, 동지중해 분쟁 문제 등에서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인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여 튀르키예 국익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전후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친서방 노선으로 급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과거 친 러시아 태도를 보인 것과 다른 모습이다.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EU 가입 조건을 걸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외교 노선에서 서방 쪽으로 급격히 무게중심을 옮겼다. 흑해곡물협정 복원 불발에 흑해 교전이 우려되고 나토와의 충돌 위험을 배제할 수 없지만 에르도안의 친서방 외교 행보는 실리적 외교 노선을 따랐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에르도안은 중립이 아닌 이스라엘을 테러 국가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튀르키예 의회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기업의 제품은 레스토랑, 구내식당, 찻집 등 의회 내 시설에서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에르도안은 가자 지구 출신 튀르키예 공립대학의 유학생들에게 올해 2학기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대통령령을 공포하였다. 또한, 에르도안은 가자에서 튀르키예로 이송되어 앙카라에서 치료받고 있는 가자 주민들을 문병하는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외 문제뿐 아니라 가장 시급하게 당면한 경제 문제 즉, 고물가와 리라화 가치 하락에 대한 심각성을 에르도안이 인지하고 세계 경제 환경, 원자재 가격, 국내경제 상황 등에 따라 저금리 기조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선거 이후, AKP는 경제 관련 정책들을 계속 내놓고 있는데 그중 하나인 부가가치세(VAT) 최대 50% 인상안이 7월 10일부터 발효되었다. 무엇보다 같은 날, 외국 핸드폰 등록비용을 6,091TL에서 20,000TL로 올린 것은 국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책으로 분석되며 또 다른 정책으로는 수입 억제를 위한 품목별 수입 관세율 인상이다. 수입을 제한하는 AKP의 정책은 과거에도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추진한 정책이다.

올해 2023년은 튀르키예 공화국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대지진과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튀르키예는 다시 에르도안에게 기회를 주었다. 에르도안은 세속주의도 이슬람주의도 아닌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국호도 튀르키예로 바꾸고 ‘튀르키예를 위해 바로 지금(Türkiye için hemen şimdi)’이라는 슬로건으로 하나됨을 외쳤다. 세속주의 국가에서 친이슬람 정당 AKP 집권 20년 그리고 앞으로의 5년의 시간이 에르도안 대통령이 부르짖던 튀르키예만을 위한 시간으로 점철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