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발생한 베이루트항 폭발사고는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왔다. 2,750t의 폭발성 유해물질을 안전조치 없이 수도의 민간 거주지역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그리고 국가의 주된 수출입항 창고에 수년간 보관해 놓은 레바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실망은 이후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연구는 종파별 권력안배주의 (confessionalism)를 기반으로 한 레바논 정권의 국가 역할 장애(dysfunction)가 일련의 사태를 촉발했다고 보고, 2015년 이후 반종파주의적이고 시민 사회적 성향을 띄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위를 촉발한 사건과 시위의 의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경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베이루트 폭발사고와 함께 터져 나온 성난 민심
2020년 8월 4일은 레바논 사람들에게 슬픔과 충격이 새겨진 날이다. 국가의 가장 주요 수출입 항구인 베이루트 항에서 두 차례의 폭발로 인해 항구는 물론 사고 지역 반경 약 10km 내에 있는 민간거주지역까지도 큰 타격을 입어 수많은 사상자와 사망자, 그리고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사고는 2014년부터 베이루트 항만 12번 창고에 안전장치 없이 보관되어 있던 질산암모늄 약 2,750t이 폭발한 것으로, 정부는 이 사실을 보고 받았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폭발사고의 원인을 방치하고, 사고가 난 후에도 재난 대책은 세우지 않고 국민들에게 그 뒤처리를 하게 뒷짐을 지고 있는 정부에 대해 국민들은 완전히 신뢰를 잃고 깊은 분노와 절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미 2019년 10월부터 가시적으로 드러난 경제 악화와 갑자기 닥친 코로나 위기로 쌓이고 있던 국민들의 불만은 결국 베이루트항 폭발사고로 인해 터져 나왔다. 재해 상황 대책이 전무해 이웃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재난 지역 수습에 나서야 했던 베이루트 시민들은 청소를 하던 빗자루를 들고 시위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시위 이후로 그 당시 국무총리가 내각과 함께 사퇴하고 그 후임으로 내정된 총리 내정자는 압박감 속에 내각을 형성하지도 못하고 퇴임하는 등 정권은 정권 구성에서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2021년 현재까지도 온전한 내각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레바논은 크고 작은 시위가 매년 있는 편이다. 특히 수도인 베이루트에서는 매년 공무원들이나 국공립학교 교직원들이 임금협상 시위를 하는 등 시위 자체는 레바논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레바논 현대 역사에서 2020년 8월 시위처럼 민중이 한목소리를 내어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는 반시리아 성향의 라피끄 하리리 (Rafiq al-Hariri) 전 총리가 2005년 차량 폭탄 테러로 사망한 후 발생한‘백향목 혁명’를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내전 이후 평화유지의 명목으로 레바논에 남아있던 시리아군을 철수시킴으로써 대규모 반시리아 시위는 레바논 현대 역사에 있어 최초의 성공한 시위로 기억되고 있으나, 사실 이시기에 레바논 정권은 친 시리아-반 시리아 성향으로 완전히 양극화되고, 국민들도 자신들이 따르는 정치 지도자의 의견을 따라 각기 다른 시위를 진행시키면서 종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국민들이 권력 안배주의 (confessionalism)에 기반한 종파주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것은 2015-16년에 있었던 쓰레기 사태로 촉발된 ‘유 스팅크! (You Stink!)’시위이다. 이 시위는 레바논 민중 시위의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당시 국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젊은 층들은 국내적으로는 시위의 조직과 소식을 전달하고 국외로도 그 당시 레바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종파가 설립한 신문과 방송국들에 신뢰를 잃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종파에도 기울지 않은 대체 미디어들이 온라인상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종파주의에 기반한 레바논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은 15년간의 내전으로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종파 이익만을 추구하며 약 30년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정 운영은 결국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와 대규모 민중 시위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2015년 쓰레기 사태를 중심으로 2020년 8월 베이루트 폭파사고 시기까지 벌어진 3번의 대규모 시민 사회적 성향, 반종파주의적 성향을 지닌 민중 시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국가보다는 개인과 종파의 이익이 우선
레바논 정권은 다양한 정치파벌들의 다극 공존형 권력 분배 (consociational power sharing) 정권 구조를 국가 형성 시기부터 유지해왔으며 최근 10년 동안 주요 국정 운영에서 서로 간 합의 도출에 빈번히 실패하며 그 취약성을 드러냈다. 레바논은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정부 구성을 위한 국가협약 (National Pact)에서 국가 통치기구를 구성하는 대통령직, 국무총리직, 그리고 국회의장직을 그 당시 사회의 다수였던 3개 종파인 마론파 기독교, 이슬람 수니파, 그리고 이슬람 시아파에게 각기 분배함으로써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힘의 균형을 이루는 통치체제를 형성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를 종파에 의해 배분한 결과, 이 체제는 서로 다른 종파 간 갈등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70년대 초반 유입된 PLO 게릴라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갈등 (전쟁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종파마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으로 1975년 내전이 발발했다.
위에서 언급된 정권의 트로이카(troika)체제는 내전 종식을 위해 1989년 체결된 타이프 협정 (Taif Accord)에서 문서화 되면서 지속 되었다. 종파주의 정치체제 그 자체는 레바논 내전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어 철폐의 대상이 되었으나, 레바논 정권은 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지속해서 이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미크다쉬 (Mikdashi, 2019)는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레바논 기득권층에게 종파주의란 ‘안전해 보이는 새장’과도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레바논 정치체제의 특성이자 두드러진 문제점 중 하나는 종파를 기반으로 한 후견주의 (clientelism)로, 지역구의 정치인들은 득표수를 위해 자신의 종파에 속하거나 종파가 다르더라도 자신의 지역구에 속한 지역주민들에게 편파적 이익을 베풀어 줌으로써 부정부패가 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후견주의는 더 나아가 국민들이 자신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종파 지도자들과 강한 유대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국가 내 종파주의적 분열은 그 강도가 심화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시기적으로 정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레바논의 정당들은 국정 운영에 있어 의도적으로 합의에 도달하지 않음으로써 정권 간 대립상황의 악화를 방지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2014년 제12대 대통령 퇴임 후 약 2년 반 정도 지속된 대통령 공백기를 들 수 있다. 이 사태는 2011년부터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시리아 정세의 불안정과 맞닿아 있는데, 2005년 시리아군 철수와는 별개로 시리아 정권은 여전히 레바논 정권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고, 이 시기 시리아 정세의 불안정은 친 시리아-반시리아로 양분된 국회의원들의 국정 운영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적 균형의 분열을 두려워하던 국회의원들은 결국 의도적으로 대통령 선출을 미루며 ‘결정하지 않는 정치’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레바논 정부는 입법과 행정에 대한 국가적 의무 수행에 불성실하게 임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역할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종파나 지역 정당, 정치 단체, 혹은 사회운동 단체 등에서 이루어진다 (고타, 2016).
레바논의 종파주의에 기반한 정치체제는 오랜 기간 뿌리내린 부정부패 및 종파 이기주의와 맞물려 내전 후 국가 인프라 재건을 위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에 걸림돌이 되었다. 정부의 공공정책 수립 부재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피해로 나타난다. 24시간 전기 공급 불가, 불안정한 상하수도 시설, 부실한 대중교통 체계 등 기본 생활 인프라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생활하던 레바논 국민들은 2015년 쓰레기 처리 및 쓰레기 매립지에 대한 졸속행정으로 쓰레기 사태가 발생하자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쓰레기 사태에 대한 민중의 목소리: You Stink! 1)
2015년 여름 베이루트 시내와 레바논 산 곳곳에는 장기간 수거해가지 않은 쓰레기봉투들이 겹겹이 쌓인 채로 방치되어 사람들은 인도까지 뒤덮은 쓰레기 더미를 피해 다녀야 했다. 레바논의 쓰레기 처리는 보통 가정에서 내놓은 쓰레기봉투들을 동네마다 지정된 장소에 모아두면 쓰레기 처리 업체가 일괄적으로 수거해가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당시 쓰레기 처리 업체와 정부 간의 계약 만료와 함께 베이루트와 레바논산 쓰레기 매립지의 매립용량 초과로 인해 더 이상 쓰레기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베이루트 지역과 레바논산 지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장소는 나으메(Naʿmeh) 매립지로, 1997년 약 3백만 톤의 용량을 10년간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장기적인 계획 부재로 그곳을 대체할 매립지 결정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채 2015년까지 1500만 톤의 쓰레기 산이 형성되었다. 시민들의 거센 시위로 인해 장기적인 쓰레기 매립지 확정이 되지 않은 채로 정부는 나으메 매립지를 닫고 다음 해 2016 새 매립지에 처리하게 하였으나 이 매립지들도 예상 밖으로 빠른 속도로 쓰레기 매립량이 증가해 결국 일시적 조치에 이르고 만다 (이경수, 2020).
쓰레기 사태가 일어난 베이루트와 레바논산 지역에서는 소규모로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시기 사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체이자 쓰레기 사태 시위의 상징이 된 단체가 바로 ‘유 스팅크!’이다. 이 단체는 쓰레기 사태에 대한 반정부 시위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젊은 사회활동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졌으며, 단체의 이름은 정치인들에게 쓰레기 사태를 대입시켜 ‘당신들 (정치인들)에게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유 스팅크!‘가 이 시기 시위를 주도했는데 초반 소규모로 진행되던 시위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면서 그 규모가 확장되어, 2015년 8월 말에는 베이루트뿐만이 아닌 레바논 전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이 전의 백향목 시위나 2011년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은 반정부 시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011년 레바논에서 있었던 아랍의 봄 시위의 경우, 참여 인원이나 시위의 강도가 튀니지나 이집트만큼 강렬하지도 않았고 지속성도 없었지만, 2015년 시위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이 강하고도 연합된 목소리로 쓰레기 사태 처리를 요구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종파주의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백향목 혁명의 경우 반시리아 성향의 시위로 이후 친 시리아 성향의 시위가 함께 일어나 국민들이 하나 된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 실패했다면, 2015년 여름의 시위는 국민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냈고, 정부에서 임시방편이나마 그 대책을 마련했다는 데서 역사적이고도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 스팅크! 운동을 대표로 이 시기에는 다양한 시민 활동단체들이 형성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형태가 존속하거나 변화하면서 지속, 확산하고 있다. 이는 2015년을 기준으로 레바논 시민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종파주의 사회체제를 극복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시위들이 베이루트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시위는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2019년 10월 반정부 시위 – 왓츠앱 시위
2019년 10월 17일 레바논에서는 정부가 2020년 예산안에서 담배, 휘발유, 그리고 왓츠앱 (Whatsapp)과 같은 소셜 미디어의 음성기반 인터넷 프로토콜(VolP)에 대한 세금을 조정하여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당일 즉각적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흔히 ‘왓츠앱’ 시위라고도 불리나, 단지 세금인상안 발표만으로 급격한 시위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이경수, 2020).
세금인상안 발표 이전부터 국가에 대한 민심은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레바논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하여 국내 달러 보유가 점차 부족해지면서 달러 대비 레바논 리라화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달러로 연료를 사들여야 하는 주유소 업자들은 달러의 국내 수급 부족으로 주유 값을 레바논 리라화로 받아야 했고, 결국 점차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2019년 9월 말 2주 정도 연료 파동이 일어났다. 이에 더해 2019년 10월 중순 레바논 남동쪽 슈프(Shūf)지역 인근에서는 크고 작은 산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화재는 시위 이틀 전 발생했다. 이 산불로 약 13㎢~15㎢에 달하는 자연보존림이 손실되고 인근 민가 또한 피해를 입었으나, 당시 국내 장비로 신속하게 대형 산불을 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레바논이 보유하고 있던 소방용 헬기는 3대이지만 관리 예산 편성의 부족으로 노후화된 설비를 수리하지 못해 사용하지 못했으며, 결국 당시 국무총리 사아드 하리리(Saʿad al-Ḥariri)는 사이프러스, 요르단 등 인근 국가에 소방용 헬기를 요청하여 사태를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연장선에서 정부가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음성기반 서비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부실한 대중교통 체계로 인해 자가용이 필수인 상황에서 휘발유에 대한 세금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인상한다는 법안을 발표하자 결국 민심이 폭발했고, 정부에 대한 목소리를 시위로 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국민들은 시위 중에 ‘모두는 모두를 의미한다 (All means all)’이라는 구호를 실제 시위와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시위 구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구호는 종파주의에 기반해 여러 명의 통치자가 존재하는 레바논 정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의 시위 구호와 차별성이 드러난다.
쓰레기 사태의 시위를 ‘유 스팅크!’가 조직했다면 2019년 반정부 시위는 또 다른 시민단체인 ‘리학끼 (Lihaqqi)’가 주도해 시위를 조직했다. 이 시기에도 다양한 시민단체의 활동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2015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조직된 NGO 성향의 정치 단체인 베이루트 마디나티 (Beirut Madinati)는 레바논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매주 주제를 정해 토론을 나누는 토론의 장 (마사하트 앗니까쉬)을 마련해 시민 사회적 담론을 지속해 나가기도 했다.
이 시위에서는 정권 퇴진 요구뿐만이 아니라 이와 동시에 소수의 독립적인 기술 관료적 내각 구성, 종파의 인구 구성 비율에 기반하지 않은 선거법 개정 및 국회의원 재선출, 그리고 횡령되거나 도난된 공공재정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를 요구하며 독립된 정치체제와 투명한 경제체계 개편을 요구했다(Chehayeb and Sewell, 19/11/02). 약 두 달간 지속된 이 시위는 다른 대도시들에도 번져 북부 트리폴리에서 남부 티레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는데, 지역별로 다수 종파가 정해져 있는 레바논 (예를 들어 북부 트리폴리에는 다수가 수니파이고 남부 티레의 경우는 다수가 시아파이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반정부 시위의 지역적 전파는 탈종파주의에 대한 다양한 종파에 속한 국민들의 목소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듬해 1월 그 당시 국무총리였던 사아드 하리리와 그의 내각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결정했다. 그의 후임으로 친시아파 성향의 대학교수 출신이자 전 교육부 장관인 하산 디압(Ḥassan Diab)이 총리로 취임했고 국민들이 요구한 기술관료직 내각 구성에 대한 요구를 표면적으로 받아들인 새 내각이 출범했다 (이경수, 2020).
2020년 8월 베이루트 폭발사고와 함께 다시 한번 폭발한 민심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 항구2)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국민들은, 특히 베이루트 시민들은 그들 자신, 가족, 친척, 이웃들이 이 폭발사고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살던 건물이 무너져 한순간에 이재민이 되는 충격을 겪었다. 사고의 원인이 6년 전 무책임한 항만 관리로 인한 인재였으며, 정부는 폭발사고 이후 신속한 재해 복구 정책 수립에 실패했다. 결국,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만들어 모금을 하고, 빈 집을 구했으며, 생필품과 음식을 구입해 나누었다.
레바논 국민들은 2019년 10월 시위 초반까지만 해도 베이루트와 트리폴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평화 시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2019년 말 시위가 지속되면서 국가는 점차 공권력을 과도하게 투입하기 시작했고, 2020년 8월 시위는 분노한 시민들과 미리 시위를 대비한 정부 간의 폭력적 양상이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레바논 정권은 군경을 동원해 시위대를 향한 반인도적 무력 진압을 자행하면서 큰 비난을 받았다. 당국은 최루탄, 고무탄, 그리고 펌프 연사식 산탄총 등을 시위대에 무작위로 그리고 사람을 향해 직접 발사해 23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Amnesty, 20/08/11).
결국, 8월 8일 시위 이후 하산 디압 국무총리와 그 내각은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원조를 조건으로 레바논 정권에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정치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리아와 이란의 영향력도 배제할 수 없었던 레바논 정부는 결국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개혁에 대한 의지는 내비치지 않은 채 또다시 표면적으로 기술 관료직 내각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 독일대사로 있던 무스타파 아딥 (Mustapha Adib)을 신임국무총리로 내정했으나 아딥은 내각 구성에 결국 실패하고 국무총리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현재는 2020년 1월 세금인상안 반대시위로 퇴임한 사아드 하리리가 2020년 10월 다시 국무총리직 내정자로 지정되었으며 6개월 넘게 대통령과 내각 구성에 관한 의견이 맞지 않아 국정 운영에 난항을 맞고 있다.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항 폭발 참사로 인해 레바논 사회는 상당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첫째로, 공산품 등 생필품의 약 85%를 수입에 의존하는 레바논에서 전체 물동량의 약 60%를 처리하던 베이루트 항의 부재로 국내 물자 수급에 차질을 빚어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2021년 2월 기준 약 80% 하락한 레바논 리라화 가치와 맞물려 물가는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둘째로, 폭발사고로 인근에 위치하는 코로나 지정 대학 병원 건물의 붕괴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사고로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과 환자들 다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돼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 2020년 9월 릴리프웹 (reliefweb) 보도자료에 따르면 폭발사고 이후 확진자 수가 220% 증가해 결국 방역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셋째로, 지속적 빈곤층의 증가이다.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ESCWA)는 베이루트항 폭발사고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레바논의 빈곤률이 2018년 당시 28%에서 2019년 8월 중순 55%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종파와 무관한 시민사회 활동은 2020년 시위에서도 지속되었다. 2019년 10월 시위의 연장선 상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직접 뉴스 기사를 제작하거나, 국민의 직접적 목소리를 뉴스처럼 취재하거나,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초청해 담론을 나누는 토크쇼를 진행하는 등의 대체 미디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들이 많이 부각이 되었는데 그중 한 예로 메가폰 (Megaphone)은 2017년 페이스북(Facebook)을 플랫폼으로 젊은 시민 활동가들이 분석적이고 평론적인 내용을 글이나 멀티미디어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광장의 소식’이라는 의미의 아크바르 앗사하(Akhbar al-Saha)는 레바논에서 일어나는 시위나 연좌 농성 등의 소식을 주로 전하는 매체이다. 이런 대체 매체들은 시의적인 논제를 카드뉴스 형식으로 제작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Instagram)등에 배포하고 있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외침
정파의 이익 우선, 그리고 권력의 양극화로 인한 원활한 국가행정 처리 의향 부재는 레바논 통치체제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 국민의 삶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그에 해당하는 일련의 사고로는 매립지 선정 미비로 인한 쓰레기 사태, 소방헬기 관리 소홀로 인한 산불 악화, 국가 재정의 불투명한 관리로 인한 경제위기, 안전장치나 사후 대책 없이 베이루트에 폭발 위험 물질을 방치하여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 등이 있다(이경수, 2020).
레바논의 시위는 2015년을 경계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사회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고, 각자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민중 시위 조직과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2015년 이후 레바논의 인터넷 상황이 향상되면서 더 많은 대중이 소셜 미디어로 시위 소식을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시위는 확산될 수 있었고, 온라인 매체를 공론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종파에 귀속된 기존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여러 사회문제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 공론화하고 있다.
시민의식과 담론은 점차 성숙해갈 가능성이 보이지만 국무총리 내정자와 대통령 간의 내각 구성의 불협화음이 지속되는 한 짧게는 6년, 길게는 약 10년간 다수의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기존 정권의 하야, 정치체제의 개혁,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 등의 변화는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우선적으로 레바논이라는 국가는 종파주의에 기반해 정권이 생성되었기 때문에 이 근간을 흔드는 것 자체가 아직은 불가능하다. 이에 더해 레바논 정권은 다른 중동 약소국과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들의 정치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종파주의 기반 정권 시스템을 외부 압력 없이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2015년 이후로 민생을 돌보지 않는 국정에 지친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뿌리박힌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거리로 나와 종파주의 타파를 요구하며 현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레바논 정권은 그들의 관점에서 형식적으로 수용 가능한 사안들만을 표면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정권의 행보도, 레바논 국민들의 시위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바논 국민들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강력하고 장기적인 민중 시위가 다시 일어날까? 아니면 더욱 분노한 국민들이 모여 폭동이 일어날까? 아니면, 코로나와 민생고로 지친 국민들은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저자소개
이경수 (kyungsoo0104@gmail.com)는
국립레바논대학교 (Lebanese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강사와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및 서아시아센터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레바논의 교육제도와 직업교육,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넓게는 중동지역의 교육, 이주노동자 등을 포함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1) 영어인 You Stink! 와 아랍어인 طلعت ريحتكم (Ṭoliʿat riḥatkum)은 고유명사로 보아 본문에서는 You Stink 를 해석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2) 베이루트 항구의 통제권은 원래 국가 산하이나 실질적으로는 세관 당국과 베이루트항 관리당국의 공동 지휘권 하에 운영되는데, 세관당국은 자유애국당(Free Patriotic Movement), 즉 현 미셸 아운(Michel ʿAon) 대통령 측에 의해, 베이루트항만 당국은 미래운동당(Future Movement) 사아드 알 하리리 측에 의해 운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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