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20여 나라는 법 집행력과 사회 화답력 역량에 따라 4가지 국가 유형으로 나뉜다. 두 국가역량이 모두 높은 경우는 ‘제한적 민주주의’ 국가로서 튀니지, 이스라엘이 해당된다. 집행력이 높고 화답력이 낮은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는 이집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라크, 알제리, 레바논, 터키, 이란이며 자유화와 권위주의 회귀를 오가는 사례다. 반면 집행력이 낮고 화답력이 높은 ‘개방적 왕정’ 국가군에는 최근 개혁에 나선 걸프 산유왕정 6개국과 비산유왕정 요르단, 모로코가 포함된다. 집행력과 화답력 모두 낮은 ‘취약한 독재’ 국가는 장기 내전 중인 시리아, 리비아, 예멘이며 이들은 국가역량의 부재 때문에 전후 재건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장지향(아산정책연구원)
국가역량에 따른 유형 분류: 집행력과 화답력의 높낮이
중동에는 20여 나라가 있고 아랍, 투르크, 페르시아, 유대, 쿠르드 민족이 살고 있다. 아랍 민족은 튀니지, 이집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라크, 알제리,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 요르단, 모로코, 시리아, 리비아, 예멘의 다수 민족이다. 투르크 민족은 터키, 페르시아 민족은 이란, 유대 민족은 이스라엘의 다수 민족이며 쿠르드 민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무슬림 다수 국가지만 이들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레바논 인구 중 40%는 기독교도다. 중동 8개국은 왕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비왕정 국가 가운데 튀니지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비민주주의 체제다.
이러한 중동 국가를 국가역량에 따라 분류해보면 좀 더 입체적 그림이 드러난다. 국가역량의 대표적 구성요소는 법 강제 집행력과 사회를 향한 화답력이다. 첫째, 법 집행력이란 국가가 특권층의 압력이나 회유에 굴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자율성을 확보한 관료 덕분에 공적영역 부정부패 정도는 낮아지고 공공기관의 신용도는 높아진다. 법 집행력과 관료 자율성의 토대는 국가의 세금 징수 능력이다. 둘째, 사회 화답력이란 국가가 구성원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시민의 요구에 응하는 역량이다. 화답력이 높은 국가는 특히 복지정책에 힘쓴다(Fukuyama 2004, North 1990).
집행력과 화답력의 높낮이에 따라 중동 국가는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표1에서 보듯이 제한적 민주주의, 위압적 권위주의, 개방적 왕정, 취약한 독재로 크게 나뉜다. 두 가지 국가역량 요소가 모두 높은 경우는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 국가로서 튀니지, 이스라엘이 해당된다. 법 집행력은 높고 사회 화답력이 낮은 유형은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이며 이집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라크, 알제리, 레바논, 터키, 이란이 포함된다. 반대로 사회 화답력이 높고 법 집행력이 낮은 국가군은 개방적 왕정으로서 산유왕정인 걸프협력회의 6개국, 비산유왕정인 요르단과 모로코가 사례다. 마지막으로 법 집행력과 사회 화답력 모두 낮은 유형은 취약한 독재 국가로서 현재 장기 내전 중인 시리아, 예멘, 리비아가 해당된다.
제한적 민주주의 국가: 튀니지, 이스라엘
튀니지와 이스라엘은 중동 내 다른 국가와 비교해 국가역량이 높다. 국가는 개혁정책을 추진해 혜택을 고르게 배분하며 법질서를 존중한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구성원을 포용한다. 튀니지는 10년 전 아랍의 봄 혁명을 겪은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 엘리트 간 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재정권 몰락 후 두 번째 총선에서 세속주의 정당 니다투니스가 집권 이슬람 정당 엔나흐다를 제치고 승리하자 이슬람주의자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세속주의자를 축하했다. 이후 두 정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해 신앙의 자유와 비무슬림 보호를 명시하는 헌법 개정에 합의했다. 두 세력의 타협은 시민사회의 중재 덕분이었다. 튀니지 대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민4자대화기구’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모두를 압박해 민주 헌법 제정을 이끌었고 2015년 이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신흥 민주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세력의 테러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해 치안력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튀니지는 민주화 이후 총선과 대선을 다섯 차례 안정적으로 치르면서 다원주의 제도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튀니지의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이 상승세라면 이스라엘의 경우는 하락세를 타고 있다. 강경 보수정당이 극우 민족주의와 안보 포퓰리즘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NGO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이스라엘 민주주의 지수는 2단계 떨어졌다(Freedom House 2020). 2018년 의회에서 통과된 유대민족국가법이 결정적 원인이다. 이후 서안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은 묵인됐고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2019년 11월 검찰이 현직 총리를 부패혐의로 기소했으나 2020년 4월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는 3차례 총선 끝에 연정구성에 성공해 최장수 총리로 등극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중도·진보 연합은 강경 보수파의 폭주를 막지 못한 채 분열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 이집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라크, 알제리, 레바논, 터키, 이란
집행력은 높고 화답력이 낮은 사례는 자유화와 권위주의 회귀를 오가는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군이다. 이들 나라의 관료제는 개방적 왕정이나 취약한 독재 국가보다 발전 정도가 높아 법 집행력, 정책 추진력, 관료 자율성도 비교적 높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역량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익이 아닌 관료 조직의 집단 이익을 위해 쓰인다. 표 1에 따르면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는 제한적 민주주의 국가처럼 ‘높은 법 집행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둘 사이 높고 낮음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이들 국가의 사회 화답력 역량은 취약한 독재 국가와 비슷하게 낮지만 국가가 사회 통제를 위해 협박과 회유 두 가지 전략을 모두 구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는 세계화의 압력 하에서 정치 자유화를 일부분 도입했으나 위로부터 통제된 이행은 종종 권위주의로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로 분류되던 터키, 이란, 레바논은 선거 권위주의로 퇴행했다. 19년째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은 21세기 술탄이라 불리며 1인 체제를 공고화하고 있다. 3선 연임으로 총리 출마길이 막히자 2010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를 탄압했다. 2016년 에르도안을 겨냥한 쿠데타가 실패한 후엔 강도 높은 공안정치가 시작됐고, 계속해서 터키 민족주의와 신오스만주의 포퓰리즘 선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란 보수 지배연합은 대선과 총선 후보 사전 자격심사에서 입후보자를 선별하며 선거 권위주의 체제를 관리하고 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체제 수호가 목표인 헌법수호위원회는 2020년 자격심사에서 개혁 성향 지원자의 60% 이상을 탈락시켰다. 지배연합은 정권 생존에 위협이 안되는 조건에서만 야권의 선거 참여를 허락하며 성직자 그룹의 군 조직인 혁명수비대는 반체제 시위대 진압에 매번 나서고 있다. 레바논은 1990년 내전 종식 후 종교·종파별 권력을 고르게 나누는 협약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지금은 정치·경제적 파산 상태다. 2020년 8월 베이루트 항구 대규모 폭발참사는 국가 실패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러한 실패에는 분권 체제를 악용하는 정파별 후원관계, 이에 대한 이란·사우디·이스라엘의 영향력 행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이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하고 있다.
이집트는 아랍의 봄 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나 1년 만에 군사 권위주의로 회귀했다. 혁명 직후 과도정부를 이끈 이집트 군부는 신헌법에 군부 권한 보장 조항을 넣으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집트 군부는 집단 지배 체제와 전체 조직력이 뛰어났기에 군 출신 독재자 무바라크(Hosni Mubarak)의 권력 사유화 정도가 비교적 약했다. 반면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는 쿠데타에 대한 공포 때문에 군부를 대폭 축소했고 비밀경찰을 키웠다. 독재자의 사적 후원망에서 배제된 군부는 조직의 역할을 국방 의무에 한정시켰고 전문 직업주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이로 튀니지는 이집트와 달리 민주화 이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 PA)는 대외적으로 외교력을 과시하지만 내부 정파갈등을 통제 못하며 시민사회를 억압한다. 1967년 결성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를 떠돌며 무장투쟁을 벌이다 1993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서안에 PA를 세웠다. 1987년 조직된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토착세력으로서 이슬람 급진주의를 내세워 PA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평화협정을 반대하고 있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두 세력 사이의 무력충돌이 이어졌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PA 통치 하 서안의 민주주의 지수는 최악인 13등급보다 2단계 위인 11등급, 하마스 통제 하 가자지구는 12등급에 해당했다(Freedom House 2020). PA는 2006년 이래 선거를 중단하고 반정부 시민운동을 탄압해왔다. 이들의 해외 원조금 관련 부정부패는 심각하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세력에 대한 감금과 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알제리는 30여년 전 자유화에 성공했으나 권위주의로 회귀했고 아직까지도 장기 정국불안을 겪고 있다. 1989년 민족해방전선의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이슬람구국전선이 첫 민주선거에서 승리했다. 군부가 선거 무효화를 선언하자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은 무장투쟁으로 맞섰고 10년 간 내전이 이어졌다. 알제리 시민은 기득권은 물론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깊은 불신을 갖게 됐고 아랍의 봄 도미노 현상이 역내를 휩쓸 때에도 시위를 조직하지 않았다. 작년에 억눌렸던 민생고로 대통령 퇴진시위가 분출해 독재자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가 물러났으나 새로운 선거에서 구정권 인물이 다시 당선됨에 따라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의 2003년 전쟁 도발 이후 국가 안정화 과정에서 협약 분권 체제를 도입했으나 민족·종파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국가 내의 아랍-쿠르드, 수니-시아 간 갈등은 이라크 내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란·사우디·미국의 대결구도때문에 악화되었다. 이라크는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지만 이웃 이란과 활발한 교역관계를 유지한다. 2019년 이란 강경파의 영향력이 국내 정치 안으로 빠르게 파고들자 정부의 독자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거센 시위가 일어났다. 여러 정파 간에도 외부 영향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합의가 모아져 총리는 즉각 사임했으나 정국 불안은 여전하다.
개방적 왕정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바레인·오만·쿠웨이트·요르단·모로코
화답력은 높고 집행력이 낮은 경우는 개방적 왕정 국가다. 이들 국가는 종교와 혈연 공동체를 강조하고 온정주의 국가관을 내세워 세습을 정당화한다. 특히 산유왕정은 오일머니 덕에 무차별 복지정책을 실시하며 비산유왕정에도 원조를 제공한다. 이러한 국가는 세금 징수 부담이 적은 대신 법 집행력이나 관련 제도적 역량이 취약하다. 이들 개방적 왕정 국가는 친서구 실용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세계 기준에 부합하는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비록 국가 엘리트가 정실 자본주의 혜택을 독식하지만 국가는 대신 사회 화답력을 내세워 복지와 순응의 맞교환으로 체제 내구성을 다져왔다. 온정주의 구호 아래 시민사회는 늘 국가 의존적이었다. 비교 관점에서 살펴보면 왕정의 관료제는 취약한 독재 국가보다 높은 수준의 집행력을 보인다. 한편 개방적 왕정의 국가 주도 친시장 체제는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의 시스템보다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산유왕정에서는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일부 동요 움직임은 빠른 회유로 마무리됐다. 비산유왕정 요르단과 모로코에서 발생한 소규모 시위 또한 정부의 즉각적인 개각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개방적 왕정 국가의 혁명 길들이기는 이웃 나라에서 나타난 혁명의 도미노 현상과 큰 대조를 보였다. 이러한 혁명 억압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나 곧 주변국에서 군부 권위주의 회귀와 내전 장기화가 자리잡자 이들 왕정의 체제 내구성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산유왕정은 극단주의 테러 위협, 이란의 패권 추구, 저유가 위기에 맞서 개혁개방을 선포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밀실외교와 단절하고 국제연합전선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세금 징수와 보조금 폐지, 첨단산업 육성, 여성인재 등용으로 탈석유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파격적 변화 추구로 내부 반발이 생겨났고 2017년 사우디·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 카타르와 단교하면서 아랍 산유왕정 형제국의 내분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유왕정과 비산유왕정 모두 코로나 19 대응에서 권위주의 감시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 격리와 봉쇄를 일사불란하게 집행하고 관련 정보를 신속히 공개하면서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보다 더 높은 국가역량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약한 독재 국가: 시리아·리비아·예멘
집행력과 화답력 국가역량이 모두 낮은 취약한 독재 국가는 현재 내전이 진행중인 시리아, 리비아, 예멘이다. 이들 세 나라에서는 아랍의 봄 혁명으로 독재정권이 흔들리자 파벌 간 분열이 확산됐고 내전이 이어졌다. 1960년대 특정 정파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후 기존 제도와 국가기구 전반을 파괴했다. 이후 국가는 사적 소유권 대부분을 약탈해 통제 관리했고 외부 세계와 단절해 폐쇄정책을 펼쳤다. 군경검은 독재자의 사유조직으로 전락했고 시민사회는 감시·통제·처벌 시스템 하에서 급진화 됐다. 이들 취약한 독재 국가에선 내전이 끝나더라도 국가역량의 부재로 인해 재건의 길이 매우 험난할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시아파 소수 분파인 알라위파 출신 아사드(Bashar al-Assad) 세습 독재정권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면서 시작됐다. 국제사회는 수니파 반군을 지원했고 이란과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을 밀었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가 시리아 동부에서 발호하면서 아사드 정권은 차악의 존재로 변했다. 반군을 지원하던 미국과 유럽·중동 동맹국은 ISIS 격퇴에 우선순위를 뒀고 그 틈을 타 아사드 정권은 반군 공세 명목 하에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 2000년 갑작스레 권좌에 오른 아사드는 내전 시기 군 고위 장성의 자율권을 철저히 보장했고 수니파 군·경제 엘리트를 적극 포용 결집시켰다. 현재 전세는 아사드 정권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리비아 내전은 카다피(Muammar al-Gaddafi) 독재정권이 민주화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흔들리면서 시작됐다. 카다피가 반군에 의해 사살된 후 2012년 총선에서 제헌의회가 출범했으나 지역과 이념으로 분열된 1700여개의 무장정파와 군벌이 동시다발적으로 할거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카다피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이용해 부족 간 분할통치를 벌인 결과였다. 또한 2014년부터는 2차 내전이라 불리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사이의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서부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슬람주의 정부와 동부 토브룩에 거점을 둔 세속주의 정부가 각각 의회를 조직해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살레(Ali Abdullah Saleh) 독재정권이 민주화 시위대 앞에 맥없이 몰락하고 과도정부가 들어섰으나 시아파 후티 반군이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예멘 내전 역시 외부세력이 개입하면서 복잡한 대리전 양상을 띄고 있다.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 동맹국은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은 아랍 동맹군의 민간인 오폭을 막도록 군사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나가며
중동의 국가역량은 전반적으로 낮다. 나라 대부분이 여타 개발도상국처럼 제국주의 영향 하에서 근대국가의 토대를 다졌고 ‘과대성장 국가와 과소성장 사회’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독립국가 출범 이후 국가 엘리트는 식민지배 시기의 강압기구와 관료제를 유지 강화했고 소수 특권층은 권위주의 정권과 후원관계를 맺고 밀착했다. 식민지배 경험이 없던 나라에서도 국가는 근대화 구호 아래 시민사회를 억압했다. 국가 주도의 발전 과정에서 성장한 노동자 계층마저 기존 체제를 종종 옹호했고 국가의 우위는 심화됐다. 이에 시민은 정실 자본가나 무능한 어용노조 대신 이슬람식 개혁을 주장하는 조직을 대안세력으로 지지했다(Henry, Jang, and Parks 2013). 그러나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첫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당으로 부상한 이슬람 정치세력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유권자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구정권의 강압기구에게 정치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튀니지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민주화 이행에 실패했고 권위주의 회귀나 내전을 경험하고 있다. 민주화의 장애물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독재 몰락 이후의 결과는 각 나라의 고유한 기존 권력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혁명 주도세력과 구정권의 강압기구가 어떻게 갈등을 조정하고 협약을 이끌어내는 지가 민주주의 안착의 관건이다.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 국가군에 속하던 터키, 이란, 레바논은 현재 선거 권위주의로 퇴행했고 사회 화답력 역량을 잃었다. 반면 개방적 왕정 국가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이들 국가는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개혁 추진력과 위기관리 역량을 보이며 법 집행력 차원에서 위압적 권위주의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두 가지 국가역량 가운데 사회 화답력의 우선 확보가 이후 법 집행력 강화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함의를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소개
장지향(jhjang@asaninst.org)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자 중동센터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으로 활동했고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참고문헌
- Freedom House. 2020. Freedom in the World 2019. Lanham: Rowman & Littlefield.
- Fukuyama, Francis. 2004. State-Building: Governance and World Order in the 21st Century.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 Henry, Clement, Ji-Hyang Jang, and Robert Parks. 2013. “Introduction.” In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edited by Clement Henry and Ji-Hyang Jang. New York: Palgrave Macmillan.
- North, Douglass C.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