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아브라함 패밀리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건축물의 고즈넉함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모스크와 교회, 유대교 회당이 나란히, 같은 크기와 소재로 세워진 그 공간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의 살아 있는 상징이었다. UAE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지어진 이 세 종교의 집은 새로운 중동 질서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협정의 설계자들은 이를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경제와 안보의 시대’라 불렀다. 당시 만났던 현지 관계자는 이 협상에 대해 ‘중동 지역은 이제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의 반격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보다 걸프 국가들을 더 강타했다. UAE의 에너지 인프라와 기술 허브, 카타르의 가스 시설, 사우디아라비아의 송유관 페트로라인, 바레인의 데이터센터가 이란으로부터 미사일과 드론 세례를 받았다. 4월8일 휴전 직전에는 사우디의 페트로라인 공격만으로 하루 60만배럴의 원유 생산이 감소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걸프 국가들을 지키지 못했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최첨단 무기도, 역내에 주둔한 대규모 미군기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걸프 국가들이 결코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과의 채널을 끝까지 유지해온 오만은 단 한 차례도 이란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 오만은 이란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며 측면에서 중재 역할을 했다. 카타르 역시 초반의 충격이 가시자 대이란 외교 채널을 빠르게 재개했다. 반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택한 UAE와 바레인은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지금은 핵 합의를 넘어 이란이 키운 역내 무장세력 해체를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우디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협상 지지를 선언하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재개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오랫동안 ‘수니파 걸프’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묶여온 이 지역의 속내는 이번 전쟁을 통해 갈라졌다. 걸프 국가들이 오랜 세월 미국에 요구해온 것은 이런 위기를 막아줄 방위 조약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수용하는 대신 방위 조약과 핵 프로그램 지원을 기대했지만, 미국은 이를 미뤄왔다. 한때 아브라함 협정을 두고 ‘새로운 중동 질서’라 말했던 이들은 지금 어떤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걸프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나무호가 미상의 비행체에 피격됐다. 이 전쟁은 이미 한국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피격 직후에도 “피격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미국의 동맹 체제가 더 이상 역내 안정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걸프 국가들을 통해 드러난 지금, 한국도 에너지 안보와 중동 외교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 걸프의 분열이 보여주듯, 이 지역에서 살아남은 국가는 독자적인 외교 채널을 유지한 나라들이었다. 동맹의 우산 아래에서 판단을 유보하는 외교는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원문링크: [국제칼럼] 걸프 못 지킨 아브라함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