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은 중동 지역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이란, 사우디, 터키 간의 각축전을 심화했다. 이란 보수 지배연합, 사우디 왕실, 터키 1인 체제 모두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이기에 세 나라의 힘 겨루기는 예측불허의 반전을 거듭했다. 결국 역내질서는 시리아 내전의 승전국 이란과 러시아의 주도 하에 비자유주의 방향으로 굳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서구의 입지축소,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체제의 취약성, 터키∙카타르의 이란 밀착행보가 확연해지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2018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이스탄불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서 정보국 요원들에게 살해됐다. 이 사건은 시리아 내전의 마무리 이후 급박하게 진행되던 역내질서 재편 과정을 뒤흔들었다. 당시 이란 강경파는 시리아 내전의 승리를 발판으로 역내 시아파 헤게모니의 장악에 전력을 다하던 중 국내 저항에 부딪히고 있었다. 보수 지배연합의 지지층이 경제 파탄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5월 미국의 제재 복원 발표까지 겹치자 이란 강경파는 지역 패권보다 집안 단속에 나서야 했다.

수니-시아의 팽팽한 대결에서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가 미소를 짓는 듯 싶었다. 그러나 카슈끄지 사건은 극적 반전을 가져왔다. 국제사회는 언론인의 죽음을 두고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이하 MbS) 왕세자를 맹렬히 비난했다. 2017년 갑작스레 승계 서열 1위에 오른 왕세자는 전례 없는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미국과 유럽에 어필했다. 왕실 내 기반을 다지고 이란의 위협도 막으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카슈끄지 사건에 우방국들은 크게 실망했고 MbS 체제의 정당성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최대 우방 미국마저 사우디 왕실에게 사우디-이란의 대리전인 예멘 내전의 휴전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이란 강경파에겐 뜻밖의 호재였다.

이란 강경파와 사우디 왕실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이 또 한번의 반전극을 이끌었다. 집권 16년차 에르도안 대통령은 8월 트럼프(Donald Trump) 미 대통령의 무역전쟁 선포 이후 빠르게 악화되는 시장 불안에 당황하던 차였다. 미국은 자국인 목사 석방을 요구하며 금융제재와 관세폭탄으로 터키를 압박했다. 리라화 폭락과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졌다. 이때 카슈끄지 사건이 터키에서 일어났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증거를 선점해 미국, 사우디와 물밑 거래를 시작했다. 결과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완승이었다. 터키는 미국과 불화를 해소하고 사우디로부터 경제혜택을 약속 받은 후 더욱 강화된 1인 체제 기반 하에 이란, 러시아, 중국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카슈끄지 사건 전 이란-사우디-터키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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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farsi.khamenei.ir/photo-album?id=36022#i (하메네이 사진 출처), https://almada.cc/?p=276588 (무함마드 빈살만 사진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2260262 (에르도안 사진 출처)

 

카슈끄지 사건 후 이란-사우디-터키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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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55686

 

이란: 시리아 내전 이후 강경파의 부상과 국내 저항

2011년 시리아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7년 후 자국 민간인을 화학무기로 200여 차례 이상 공격한 아사드 정권은 전쟁 승리와 정상국가 복귀를 선언했다. 내전이 시작됐을 때 미국과 서구∙중동 동맹국들은 반군을 도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장악해 등장하자 미국은 시리아 정권이 아닌 ISIS 축출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꿨다. 시리아 내전이 정부군, 반군, ISIS 간 3파전으로 얽히며 교착 상태에 빠지자 공공의 적 ISIS 격퇴에 집중한 것이다. 2017 년 말 ISIS 지도부가 시리아 락까와 이라크 모술에서 축출되면서 아사드 정권의 생존이 확실해졌다.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 되면서 전쟁 기간 내내 아사드 정권을 전폭적으로 도운 이란과 러시아는 전후 지역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이란 울라마 체제의 군사조직 혁명수비대는 시리아를 비롯해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의 친이란 강경파를 지원하며 역내 헤게모니 장악에 주력했다. 혁명수비대의 사령관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와 장성들이 내전 현장을 직접 지키고 수 많은 지상전투군을 투입한 대가였다. 혁명수비대 소속 고위급 장성만 39명 이상 전사했으며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 출신 민병대 수 천명도 혁명수비대의 지휘체계 하에서 정부군을 위해 싸웠다(Asadzade 2017). 전쟁이 끝난 후에도 혁명수비대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에서의 대규모 해상훈련, 신형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자체개발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과 전투기 공개를 이어가며 패권 추구의 야심을 보였다.

그러자 국내에서 거센 반발이 시작됐다. 2018년 초부터 울라마-혁명수비대 지배연합의 지지층이 물과 전기 부족, 물가 폭등에 항의하며 대규모 민생고 시위를 조직했다. 시위의 근원지 마슈하드는 시아파 성지가 있는 곳으로 보수 지배연합의 거점인 동북부 지역에서 종교색이 가장 짙은 도시이다.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Ali Khamenei)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방 중소도시의 보수층과 저소득층은 전통적인 체제 지지세력이었기에 이들의 변심과 저항은 지배연합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금껏 이란 내 시위는 온건 개혁파의 지지세력인 대도시 중산층, 대학생, 여성 활동가가 조직해왔다. 보수 지배연합의 지지층이 주도한 이번 시위에 온건 개혁파의 지지세력이 조직적으로 연대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시위는 규모 면에서 1979년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란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 시장 상인들의 민생고 시위
출처: creative commons

시위대의 구호도 파격적이었다. ‘독재자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팔레비가 그립다’며 이슬람공화국의 최고 수장을 직접 공격했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이 아닌 국내 민생을 챙겨라,’ ‘트럼프가 아닌 이란 체제가 문제다’면서 경제 파탄의 원인이 강경파의 헤게모니 추구와 부정부패, 무능에 있다고도 봤다. 실제로 혁명수비대가 시리아 내전, ISIS 격퇴전,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 이라크의 급진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는 동안 국내 경제는 급격히 피폐해졌다.

재계의 큰 손인 울라마-혁명수비대 지배연합은 2015년 이란 핵협정 체결 이후 활성화된 민영화와 시장개방 정책을 적극 반대해왔다. 종교재단과 혁명수비대 산하 회사는 민관 인프라∙플랜트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독식하며 세금면제 혜택까지 받아왔다.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회사는 석유와 가스 분야에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지만 건설, 부동산, 통신, 미디어, 전자, 자동차, 금융, 농업 분야에도 골고루 퍼져있다. 혁명수비대는 국가 전체 자산의 40%가 넘는 부를 소유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암시장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Batmanghelidj 2018, Fayazmanesh 2013).

2018년 8월 미국발 1단계 제재가 시작되면서 리알화 가치는 70% 이상 떨어졌고 기본 식료품 가격은 50% 이상 올랐다(Majidyar 2019). 초여름 가뭄이 농촌을 강타하자 지방 소도시 시위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노후 수로시설로 인한 인재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는 부패와 간첩 혐의로 고위 공무원 60여명을 체포했고 사회정의 실현과 저항경제 복귀를 강조했다. 혁명수비대는 핵합의를 성사시킨 온건 개혁파에게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여론의 화살은 여전히 강경파를 향했고 시위대의 구호는 울라마 체제를 문제 삼았다. 보수 지배연합은 대외 팽창정책이 아닌 내정과 집안단속에 집중해야 했다.

이때 국내 저항으로 흔들리던 강경파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카슈끄지 사건이었다. 잠시나마 숨통을 틔운 이들은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후 결성된 중국-러시아-터키-카타르 연합을 뒤에서 지원하며 현상유지 전략 추구를 결정했다. 경제적 도움을 위해서도 이들 국가에게 기대야만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1인 주도의 개혁개방과 카슈끄지 사건, 그리고 외부 압박

2018년 10월 2일 사우디에서 급파된 정보 요원 15명이 터키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서 언론인 카슈끄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아직까지 사체의 행방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 카슈끄지는 1년 넘게 사우디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활동하며 워싱턴포스트 고정 칼럼을 쓰고 있었다. 왕세자 주도 개혁의 더딘 속도, ‘절대 권력’ 체제 하의 언론탄압 등을 비판해왔다. 사건 직후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의 사망 자체를 부정했으나 이어 ‘우발적 살인’으로 입장을 바꾼 후 왕세자 측근 몇 명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계획된 살인’까지 인정했다. 터키 당국이 연이어 자세하게 폭로하는 증거 때문이었다. 사우디 검찰은 관련 책임자 11명을 기소했고 이 중 5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건 후 한 달이 지나 미 CIA는 MbS 왕세자의 배후설을 제기했으나 사우디는 강력히 부인했다. 2019년 2월 유엔의 진상 조사단은 사우디 정부의 계획 살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제사회는 분노했고 미국과 유럽 내부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금수와 제재 여론이 거셌다. 특히 카슈끄지가 몸담고 있던 미 언론계는 MbS 왕세자에 대한 비난 수위를 연일 높였다. 미국은 예멘 내전에서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 전투기에 대한 공중 재급유 중단을 결정하고 사우디에 휴전 수락을 압박했다. 시리아 내전처럼 예멘 내전도 수니파-시아파의 대결로서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 동맹국은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해왔다. 국제사회는 후티 세력이 아닌 현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미국과 영국은 아랍 동맹군의 민간인 오폭을 막도록 첨단 군사기술을 지원해왔다.

2017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왕세자에 지명된 30대 초반의 MbS는 파격적인 개혁개방을 내세웠다. 무엇보다 보수 이슬람과 석유 의존 체제의 탈피 정책을 실시했다. 여성 운전, 여성 축구장 입장, 콘서트 남녀 혼석이 허용됐다. 35년 전 폐쇄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고 최첨단 오락 도시들도 들어설 계획이다. 세계 최대 국영회사 사우디 아람코의 해외 상장과 대규모 신산업 육성 프로젝트도 발표됐다. 사우디는 셰일 업계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증산 정책을 폈고 저유가로 인한 재정 위기를 견뎌야 했다. 셰일 개발의 채산성을 낮춰 장기적으로 시장 우위를 확보하려 했으나 무차별적 복지로 유지해 온 왕실의 기반이 당장 흔들렸다. 반면 난립했던 셰일 업체들은 치열한 시장 논리에 맞춰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고 안정을 찾아갔다. 사우디의 경제∙사회 개혁개방은 빠를수록 좋았다.

MbS 왕세자는 비밀스러운 뒷거래를 통한 외교의 탈피도 선언했다. 사우디는 1980년대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옛 소연방에 맞서는 다국적 무슬림 무장조직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냉전 후 미국과 사우디는 활용도가 떨어진 무자헤딘을 냉대했고 사우디 출신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잔류 세력을 모아 극단주의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조직했다. 사우디 오일머니와 밀실외교의 합작품 알카에다는 2003년 리야드에서 도심 총격전, 주요 시설 연속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사우디 왕실을 정면 겨냥했다. 사우디는 투명하지 못한 외교 때문에 자신의 안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미처 몰랐다.

현재 사우디 안보의 최대 위협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급부상이다. 7년여 간의 시리아 내전에서 사우디가 밀었던 반군은 이란이 지원한 정부군에게 패했다. 3년이 넘도록 교착상태에 빠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는 정부군을 지원하며 설욕을 노렸다. 이란이 후원하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 본토를 향해 100여 차례 이상의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면서 리야드 국제공항 일부가 무너지고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MbS 왕세자는 이 역시 외교안보의 개혁개방으로 풀겠다고 했다.

문제는 왕세자 혼자서 이 모든 개혁을 좌지우지 한다는 점이다. 2017년 말 MbS 왕세자는 왕자 11명과 전현직 관료, 기업가 200여 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해 리츠칼튼 호텔에 구금했다. 반부패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한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국고 헌납한 후에야 풀려났다. 적법한 절차였다지만 1인 권력 강화를 위한 숙청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사우디의 여성 운전 허용
사진 설명: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길거리에서 여성 운전 금지 조치가 법령에 의해 폐지된 이후 Huda al-Badri(30세)가 운전대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원자료: http://www.epa.eu/politics-photos/transport-human-rights-photos/saudi-women-driving-ban-ends-photos-54437087

MbS 왕세자의 서열 1위 등극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2015년 서열 2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이뤄진 깜짝 상승이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에 새로 생긴 왕실 선출위원회를 통한 집단 합의의 결과라지만 원래 서열 1위였던 사촌 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Mohammed bin Nayef) 당시 왕세자를 감금해서 얻은 결과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자신의 부정적 평가를 불식시키려는 듯 MbS 왕세자는 미국과 유럽을 돌며 자유분방한 개혁가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2018년 3월 첫 해외 순방에 나선 MbS 왕세자는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의 각계 인사를 만나며 적극적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3주 간의 방미 일정을 통해 국가 이미지 개선과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게다가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이하 젊은 세대가 보조금 삭감까지 감수하며 왕세자의 사회 개방, 경제 다변화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니 국제사회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다.

높았던 기대감만큼 카슈끄지 사건에 따른 실망도 컸다. 권력의 정점에서 과도한 자신감에 취해있던 왕세자는 개혁개방의 가치와는 한참 동떨어진 사건에 연루됐다. 물론 중동 국가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자유 지수는 세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사우디는 물론 여타 아랍 산유왕정, 이란, 터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혁 정책을 통해 국제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변신하겠다는 젊은 왕세자의 강한 의지 표명은 국제사회와 우방국에게 믿음직하게 들렸다. 사실 지금의 개혁 질주가 아니고는 사우디가 처한 위기를 타개할 다른 옵션은 없어 보였다. 결국 기대를 져버린 왕세자에게 우방국들은 크게 분노했다.

개혁개방의 아이콘 왕세자는 국제사회 복귀를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사우디는 예멘 내전에서 병력 철수와 교전 중단이라는 미국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란과 후티 반군에게 이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치킨게임의 승자는 이란의 강경파였다.

 

터키: 역내 힘의 공백 속 대통령 1인 체제의 불안한 현상유지

이란과 사우디 내부의 폐쇄적인 권력독점 구조 때문에 둘 사이의 대결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역내 정세의 혼란 속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국에서 일어난 카슈끄지 사건 폭로의 전면전에 나섰다. 미국의 우방 사우디의 약점을 공격해 두 달 전 시작된 미국발 고강도 무역 제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6월 재선에 성공해 2033년까지의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했으나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게 됐다.

8월 미국은 터키에 억류 중인 브런슨(Andrew Brunson)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올렸다. 브런슨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인 복음주의 교단 소속으로 2016년 에르도안 대통령을 겨냥한 쿠데타 발발 후 체포됐다. 터키의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종교학자 귤렌(Fethullah Gülen)을 미국이 증거 불충분으로 소환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터키는 미국산 자동차, 주류, 담배, 플라스틱 등의 관세를 두 배 올리고 미국산 전자제품 불매운동으로 맞대응 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천연가스 수입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터키의 등급을 일제히 강등했고 터키의 IMF 행이 수순인 듯했다.

터키의 긴급 요청에 카타르는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와 양국 통화 스와프 협정을 발표해 우의를 과시했다. 타밈 알 싸니(Tamim bin Hamad Al-Thani) 카타르 국왕은 아랍 산유 왕정 형제국들과 추구해온 친서구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 외교를 선언했고 이란, 터키와 밀착행보를 보여왔다. 이란의 패권 부상 시기와 맞물린다.

터키와 미국의 갈등이 새로울 건 없다. 미국과 서구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1인 체제 강화로 인한 민주주의와 인권 퇴행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10년 전만 해도 에르도안 당시 총리는 터키를 무슬림 민주주의의 모델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다. 이스탄불 시장 출신 에르도안은 2001년 온건 이슬람 정의개발당을 세워 시장화와 세계화를 내세웠다. 부패하고 무능한 기존 세속주의 정당들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정의개발당에 열광했다.

하지만 10 년 넘게 단일정부를 구성하며 권력을 장악해 온 에르도안 총리는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갔다. 3 선 총리 연임으로 출마가 더 이상 어렵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켜 당선됐다. 숱한 친·인척 비리가 폭로되자 강도 높은 언론 탄압이 이어졌다. 2016 년 쿠데타가 진압되고 시작된 공안정국 하에서 공직자 15만여 명이 해임되고 군인과 언론인 5만여 명이 체포됐다. 미국 NGO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터키의 언론자유 정도는 독재 수준으로 떨어졌다(Freedom House 2018). 터키의 대외정책도 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과 ISIS 격퇴전에서 쿠르드계 반군이 국제사회와 서구의 지지를 받자 국내 쿠르드계 소수민족을 거세게 탄압하는 동시에 친아사드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후 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원하는 이란, 러시아와 부쩍 가까워졌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사우디, 터키 방문
출처: 미국 Department of State Flickr https://www.flickr.com/photos/statephotos/32862953548/in/photolist-S4Zeao-WH2Sn8-2d88eob-2d88eEU-2c71SH6-S65e9L-2cYCXRJ-23thpbt-23tQ7Ak-2e13zJU-X4NwnA-25fDA54-23V7S47-23V7SK7-NmhBp4-JxktVC-JxkuBY-PXVeyj-25S82yT-29m1b2f-26ysuoC-26ysutY-27GkaSk-25wrgm9-2d88fis-29kPavY-S4ZfDW-25yargQ-S4Zc6o-25h3qEv-25i9j7n-23SrjcG-PXV1iw-29kzVbw-29nqtQs-23Srkqd-NnL3GZ-PZQv1Q-26zRD4w-H1JT74-2cbjQxp-2b1v5Xh-26A23ky-S65ckA-PXUVt1-2cQimhe-NmhWCe-23TWk7y-23tQ7yB-26zRS7f

카슈끄지 사건 직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사우디와의 거래에서 우위를 점했다. 폼페이오(Michael R. Pompeo)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와 터키를 잇따라 방문한 후 터키는 2년간 구금해 온 미국인 목사를 전격 석방했다.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살만(Salman bin Abdulaziz Al Saud) 국왕과 전화 통화를 나눈 후 사우디를 향한 정면 비판을 멈췄다. 터키 언론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던 ‘참수, 손가락 자르는 고문, 산채로 해부’ 등의 잔혹한 의혹들 대신 검찰의 ‘교살 후 시신 훼손’ 공식 발표가 이어졌다. 거래의 대가로 외환 위기에 숨통을 틔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제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종전 협상을 주도하며 피스 메이커로의 변신에 주력하고 있다.

 

카슈끄지 사건 이후 중동 자유주의 질서의 쇠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무역, 시장경제, 다자주의는 중동에서 함께 공유할 규범으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반독재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면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7년여 만에 세습독재 정권의 승리로 끝났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도와 내전을 승리로 이끈 이란과 러시아는 전후 질서를 이끌며 평화 회담을 조직하고 있다. 친서구 블록에 속하던 터키, 카타르는 이제 이란, 러시아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 이후 미국과 유럽의 분열은 심화되고 있다. 국제 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는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확인했으나 미국은 주요 6개국과 이란이 어렵게 합의한 다자결정을 파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스캔들 정국의 돌파를 위해 핵심 지지층 백인 복음주의자 그룹의 결집을 꾀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일방적 탈퇴에도 유엔은 회원국에게 이란 핵협정을 계속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과 사업을 이어가는 중소기업에게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의 2단계 이란 제재가 시작된 11월 IAEA는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재차 확인했다. 2019년 1월 영국, 프랑스, 독일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면서 이란과 교역을 지속하기 위해 인스텍스(Instrument in Support of Trade Exchanges, INSTEX) 금융회사를 설립했다. 이란의 강경파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를 격렬히 비난했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중동을 떠날 준비에 분주하다. 2018년 12월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발표가 대표적 예이다. 미국과 유럽은 둘 사이의 갈등 때문에 이란, 러시아, 시리아, 터키, 카타르, 중국의 이익에 맞춰 강화되는 역내 비자유주의 질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당분간 중동 자유주의 질서는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다.

 

저자소개

장지향(jhjang@asaninst.org)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자 중동센터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으로도 활동했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참고문헌

  • Asadzade, Peyman. 2017. “Iran’s involvement in Syria is costly. Here’s why most Iranians still support it.” Washington Post. October 19.
  • Batmanghelidj, Esfandyar. 2018. “Tougher U.S. sanctions will enrich h Iran’s Revolutionary Guards.” Foreign Policy. October 4.
  • Fayazmanesh, Sasan. 2013. Containing Iran: Obama’s Policy of Tough Diplomacy. Newcastle upon Tyne: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 Freedom House. 2018. Freedom in the World. Lanham: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 Majidyar, Ahmad. 2019. “Iran’s economic challenges reach a crisis point.” Middle East Institute’s Monday Briefing. February 11.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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