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2일-31일 튀르키예 현지 조사
한하은(서아시아센터 공동연구원)
이스탄불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한국문학번역 워크숍’ 참석
23일 10시, 이스탄불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님의 초대로 ‘차인표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였다. 이스탄불대학교 본관 2층 블루홀(Mavi Salonu)에서 교수진과 재학생을 비롯해 주이스탄불 대한민국 총영사 및 공관 관계자, 세종학당 강사와 수강생, 재외국민과 현지 시민 등 약 120여 명이 참석한 규모가 큰 행사였다. 강연에서 차인표 작가는 한글의 미학과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경험을 진솔하게 공유하였고, 이후 차인표 작가의 소설 “인어사냥”에 대한 학생들의 독후감 발표와 질의응답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환경 문제라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행사 다음날인 24일에는 한국어문학과 강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인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해당 학과의 교육과정과 학습 환경, 학생들의 진로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튀르키예 내 한국학 연구의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학업 성취도와 경쟁력을 갖춘 학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탄불 모던(Istanbul Museum of Modern Art) 방문
이스탄불 모던은 보스포루스 해협 연안 갈라타포트에 위치한 튀르키예 대표 현대미술관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중심으로 교육·연구·아카이브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종합 문화기관이다. 상설 및 기획 전시는 튀르키예와 국제 현대미술을 통해 공화국 이후 사회 변동을 문화적·미학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개인의 삶과 도시의 변화가 예술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며 관람객에게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28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전시는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Between Worlds’로, 실을 활용한 설치 작업을 통해 존재와 부재, 경계와 이동이라는 보편적 인간의 경험을 전시장 전체 공간으로 확장해 보여주는 설치 전시였다. 관람객의 이동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전시 방식과 실 사이에 놓여 있던 많은 여행용 트렁크들은 이스탄불이 지닌 오랜 역사와 멜랑꼴리한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이 도시가 겪어 온 수많은 이동과 이별, 기억의 흔적을 떠올리게 했다. 역사를 품은 수많은 유산들 속에서 모던 미술관의 방문은 새롭게 변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현재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었다.
공화국 기념일(Cumhuriyet Bayramı) 퍼레이드 참석
29일,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을 기념하는 공화국 기념일(Cumhuriyet Bayramı)을 맞아 이스탄불 베쉭타쉬(Beşiktaş) 지역에서 열린 학생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하였다. 본 행사는 1923년 공화국 수립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공화국의 가치와 시민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국가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베쉭타쉬는 이스탄불에서도 세속주의와 공화국 가치에 대한 시민 참여가 활발한 지역으로, 이날 행사에는 인근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퍼레이드 형식의 행진을 펼쳤다. 학생들은 튀르키예 국기를 들고 아타튀르크의 초상과 공화국 관련 구호와 노래를 외치며 공화국 수립의 의미를 집단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번 퍼레이드는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젊은 세대가 세속주의와 공화국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공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또한 가족 단위 시민과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호응 속에서, 공화국 기념일이 오늘날에도 지역사회와 시민 일상 속에서 살아 있는 기억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속주의 여성운동가, 교수, 대학생, 직장인 인터뷰
현지 조사 중 만난 세속주의 여성운동가, 교수, 대학생, 직장인은 현 정권에 대해 비판과 긍정을 동시에 담은 복합적인 평가를 제시하였다.
긍정적으로는 교통·공항·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확충과 전자정부(e-Devlet) 시스템을 통한 행정 절차 간소화가 일상에서 분명히 체감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공공의료 접근성 개선과 기본적인 복지 지원은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생활의 편의성과 안정성을 높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비판적 인식은 역시 뚜렷했다. 장기 집권 속에서 세속주의와 제도적 견제가 약화되고, 표현의 자유 위축과 사회 전반의 보수화가 일상적 불안과 자기검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 불안과 청년층의 미래 전망 악화는 인프라 성과로 상쇄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종합적으로 응답자들은 현 정권이 행정 효율과 생활 편의 측면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민주주의와 사회적 가치의 후퇴라는 근본적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빌기대학교 도서관 방문
30일, 이스탄불 빌기대학교(Istanbul Bilgi University) 도서관을 방문하여 튀르키예의 정치사, 시민사회, 여성운동 관련 주요 자료를 조사하였다. 특히 현대정치와 젠더 연구 분야의 단행본과 학술지가 잘 구축되어 있어 연구 주제와의 높은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젠더와 법·노동을 다룬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으며, 일부 현지 한정 자료와 회색 문헌은 향후 연구에 유용한 1차 자료로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이번 방문은 관련 문헌 환경을 파악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의미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