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두려움이 낳은 비극
2023년 10월 6일,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 공격하며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이 2년째 진행 중이다. 2년간 지속된 분쟁은 최근 휴전 합의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긴장 상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에 두 지역간 오랜 역사적 분쟁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

 가자지구의 비극적인 참상
2023년 10월 6일, 가자지구를 근거지로 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스라엘 본토가 공격당한 건 1973년 이집트와의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1,200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했고 251명이 포로로 잡혀 가자지구로 끌려갔다.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단호하고 강경한 보복을 예고했고 인질 구출과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내걸며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가자지구 전쟁의 시작이었다.

2년간 이어지던 전쟁은 2025년 10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며 현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피해는 막대했다. 팔레스타인 국민 6만 7,000명이 사망했다. 이 중 1만 8,000명이 어린이였다. 건물 10채 중 8채, 주택 10채 중 9채가 파괴되고 가자지구 주민 10명 가운데 9명이 피난민 신세가 됐다. 이스라엘군은 465명이 전사했다.

휴전은 위태롭기만 하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휴전 협정을 위반했단 이유로 군사 작전과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 가자지구 주민에게 긴급히 필요한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자도 이스라엘군의 통제로 인해 턱없이 모자란 양만 반입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전한 종전과 평화 정착을 위해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 △하마스의 무장해제 △국제안정화군(ISF) 주둔 △새로운 과도 통치기구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평화 구상을 내놓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트럼프의 구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가자지구 전쟁은 1948년 1차 중동전쟁, 더 멀게는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이자 분쟁의 한 장면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평화를 위한 노력이 성과를 거둔 적도 있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여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처럼 보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고향을 되찾으려는 이스라엘
  고향을 지키려는 팔레스타인

나라 없이 살아가던 유럽의 유대인들은 19세기에 들어 시오니즘 또는 시온주의라고 불리는 이념이 등장하며 그들만의 국가를 꿈꾸기 시작한다. 유대인 운동가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이 정립한 시온주의는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에게 약속된 땅인 시온(Zion), 즉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 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주인이며 팔레스타인은 ‘주인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엔 이미 아랍인, 즉 팔레스타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은 유대인의 지원을 받고 영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 정착시켜 지중해에 교두보를 확보할 목적으로 시온주의자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1917년 영국 외무부 장관인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가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단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벨푸어 선언’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고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통치권 아래에 들어가자 유대인 이주 규모는 커지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 국가 건설을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침탈로 받아들였고 유대인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빼앗는다고 여겼다. 유대인 이주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자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분할하자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유대인이 국가를 세운단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아랍 국가는 1947년 UN 총회에서 통과된 팔레스타인 분할을 거부했고 1948년 유대인이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자 침공했다. 이렇게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됐다.

 두 차례의 전쟁,  팔레스타인의 비극

1차 중동전쟁은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패배로 끝났다. 이스라엘군은 아랍 연합군보다 전쟁 준비가 더욱 잘 돼 있었고 군인 수도 많았다.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했다. 전쟁 전 130만 명에 달하던 팔레스타인 사람 가운데 약 70만 명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됐다. 1차 중동전쟁 패배와 대규모 난민 발생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닥친 대재앙이란 의미로 오늘날 ‘나크바(nakba)’라고 불린다.

팔레스타인에 두 번째로 닥친 패배는 1967년 6월에 일어난 3차 중동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압승을 거뒀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까지 장악하며 팔레스타인 전역을 차지했다. UN은 결의안 242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해 사실상 병합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 영유권을 침해하는 문제로서 양측 갈등의 주요 쟁점으로 자리 잡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땅을 둘러싼 갈등인 동시에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다. 양측 모두 갈등의 책임을 상대에 전가한다.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가를 가질 기회가 있었음에도 분할을 거부했단 점을 지적하며 갈등의 원인이 팔레스타인에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이 조직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을 추방하고 땅을 빼앗아 종족 청소를 자행했단 역사적 기억을 제시한다. 피해자란 지위는 요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며 따라서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이 차지한 피해자 위치에 도전하고 있다.

 좌절돼 버린  평화 협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에 도달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던 건 아니다. 1993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총리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역사적인 협정을 체결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처음으로 상대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상호 공존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 반환해 자치를 인정했다.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며 함께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이란 원칙이 합의됐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이 가져온 기대와 희망은 곧 좌절됐다. 오슬로 협정에서 추후 논의하기로 미뤄둔 문제, 즉 정착촌이 세워진 서안지구 영토의 제한적인 자치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양측 사이의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평화 협상은 진척을 거두지 못했다. 이스라엘도 협정 이행에 소극적이었다.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좌절은 하마스로 대표되는 무장 강경파가 성장하는 토양이 됐다.

1987년 조직된 하마스는 PLO와 다르게 오슬로 협정과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전역을 해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경 투쟁을 고수했다. 이스라엘 또한 무장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거부했으며 2005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은 △2008년 △2012년 △2014년엔 전쟁으로까지 확대됐다. 2023년 일어난 전쟁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오랜 적대 관계가 가장 끔찍한 형태로 폭발한 사건이었다.

 급변하는 중동 정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중동 분쟁의 오랜 기폭제였다. 이번 가자지구 전쟁 또한 중동 정세에 큰 격변을 가져왔다.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하마스를 지원해 왔던 이란과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Hezbollah)는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대적 반격에 나서며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으로 조직 지도부가 궤멸당하는 타격을 입었고 이란 역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군부 고위 지휘관들이 대거 사망했다.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하마스, 헤즈볼라 등 무장 조직을 이용하던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입은 피해로 크게 약화하면서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됐다.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했단 점도 이스라엘이 얻은 성과다.

이스라엘은 승세를 몰아 가자지구를 완전히 비무장화한단 입장이지만 군사적 승리 이후 정치적 승리를 거둘 방안에 관해선 여전히 불확실한 점이 많다. 하마스가 사라진 이후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관리할 주체는 누가 될 것인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가 건설되지 않고 갈등이 종식될 방안은 있는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할 수도, 독립을 인정할 수도 없다면 갈등은 어떻게 해결돼야 하는가? 이스라엘은 현재 전투에서 이기긴 쉬워도 전쟁에서 이기긴 어려운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황의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박사

원문: 덕성여대신문(http://www.dspres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