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정치지형은 정치, 경제, 사회 및 외교를 둘러싸고 크게 4개의 정치단체, 즉 전통 우파(보수파), 좌파(개혁파), 현대 우파(중도파) 및 신원리주의자(강경파)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절대 권력을, 반면에 좌파와 현대 우파는 헌법에 따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의회에서 2015년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란 정치단체들은 2017년 대선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다.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이후 이란의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이란 내부의 권력투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유달승(한국외국어대학교)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이후 이란의 반발과 내부 상황
2018년 5월 8일(현지 시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5년의 이란 핵 협정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면서 핵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8월 3일부터 5일까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의 군사훈련을 벌였다. 이란은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전면 차단하면 전 세계 해상 원유수송량의 1/3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8월 7일부터 금융 및 일반 무역에 대한 1단계 경제 제재를 실시했고 11월 5일부터 에너지 무역 및 석유산업 등 본격적인 2단계 경제 제재를 복원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이후 이란의 경제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물가 폭등과 리알화(이란 통화)의 가치 하락 등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의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란의 정치권은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외부의 압력에 대항하여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번에는 로하니 정부의 반대 진영에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란 정치엘리트의 이념 지형도
이란의 헌법에는 정당 설립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호메이니는 당시 집권당인 이슬람공화당의 내부 불화와 갈등을 비판하면서 1987년 6월 공식적으로 해체시켰다. 1988년 새로운 정당법에 의해 정당설립을 허가제로 바꾸었으나 지금까지 허가된 정당은 없고 단지 정치단체만이 존재할 뿐이다. 분파주의는 이란 정치의 토대를 구성하고 있고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지향과 분파 간 권력투쟁을 이해하는 것은 이란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현재 이란의 정치엘리트는 크게 4개의 정치단체, 즉 전통 우파, 좌파, 현대 우파 및 신원리주의자로 나누어진다.
전통 우파와 좌파는 이슬람 혁명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이슬람 혁명과 이후 건설에서 이슬람 우파와 이슬람 좌파가 혁명이념과 경제건설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결국 이슬람공화당이 해체하게 되었다. 현대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이슬람 혁명 이후 전통 우파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면서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전통 우파는 보수파, 현대 우파는 중도파, 좌파는 개혁파, 신원리주의자는 강경파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이란의 정치체제(이슬람법학자통치론: Velayat-e Faqih)에 대한 시각, 사회문화적 자유 논쟁, 경제 정책 및 대외 정책에서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이란 정치단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란 정치체제의 토대인 이슬람법학자통치론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나타난다.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최고지도자의 절대 권력을 강조하지만 좌파와 현대 우파는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헌법에 따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사회문화적 문제에서 좌파와 현대 우파보다 강경하고 엄격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좌파와 현대 우파는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전통 우파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신원리주의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 전통 우파와 현대 우파는 자유 시장 경제를 선호하지만 전통 우파는 저항 경제, 현대 우파는 이란의 필요성을 전제로 세계경제체제로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좌파는 국가 중심의 경제 모델을 선호하지만 외국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원리주의자는 명확한 경제적 의제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경제개혁을 강조한다.
전통 우파: 보수파
전통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이다. 1989년 6월 4일 하메네이가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선출되자 전통 우파는 강력한 경쟁 정파인 좌파를 정치권력에서 배제시키면서 이란 정치체제의 핵심요직을 장악했고 오늘날 이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단체로 성장했다. 이란의 정치체제는 호메이니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이론인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은 이슬람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이슬람법학자가 통치하는 사회를 의미하며 이맘의 은폐기 동안 이슬람법학자를 이맘의 대리인으로 보았다. 이슬람법학자통치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최고이슬람법학자’(Vali-ye Faqih)인 ‘최고지도자’(Rahbar-e Moazzam)로 이란의 실질적인 1인자이다. 최고지도자 모델은 이제까지 시아파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위로 그 역할을 둘러싸고 현재 이란 내부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전통 우파는 최고지도자의 절대 권력을 강조하는 신정주의 국가모델을 선호하고 시아파 성직자의 영향력을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전통 우파의 가장 강력한 조직은 ‘투쟁하는 성직자 연합’(Jame-e Rouhaniyat-e Mobarez: JRM)로 1978년에 창설되었지만 거의 활동하지 않다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직화되었고 그 구성원들은 이란의 주요 권력기관에 있다. 그들은 이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콤 신학교 교사협의회’(Jame’e-Modarresin-e Howzeh-ye-Elimiyyeh Qom)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전국적인 상인단체와 종교단체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자유에 대한 전통 우파의 시각은 매우 엄격하며 서방의 자유주의 문화침투를 무엇보다도 경계한다. 그들은 이슬람의 전통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이슬람 복장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하며 여성의 사회참여를 제한한다. 전통 우파의 경제 정책은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며 2014년 2월 19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발표한 저항 경제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지식기반 산업을 토대로 한 자립경제 체제를 의미한다.
전통 우파는 원칙적으로 사유 재산과 기업가 정신을 옹호한다. 그들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 이유는 자유로운 상인 경제를 통해 종교 기관에 기부금이 증가하면 성직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신이 만든 질서의 본질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근절될 수 없기 때문에 자선 행위와 국가 보조금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경감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방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뢰를 전제로 한 관계개선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미국에 대항해 무력충돌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통 우파의 지지기반은 보수적인 성직자, 이슬람혁명수비대(Pasdaran), 민병대(Basij), 시장 상인 및 중하층이다.
좌파: 개혁파
좌파의 상징적인 인물은 녹색 운동의 지도자였던 무사비(Mir-Hossein Mousavi), 카루비(Mehdi Karroubi) 및 하타미(Mohammad Khatami) 전 이란 대통령(1997년-2005년 재임)이다. 무사비는 1981년에서 1989년까지 총리를 역임했고 카루비는 2000년에서 2004년까지 국회의장을 지냈고 둘 다 2009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좌파는 이슬람 혁명 직후 이슬람혁명수출을 주장하는 강경론이었지만 이후 온건론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1992년 제4차 국회의원선거에서 ‘헌법수호위원회’(Shura-ye Negahban)는 수많은 좌파 소속 입후보자의 자격을 박탈시켜 소수 정파로 전락시켜 좌파는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하지만 1997년 하타미의 당선을 계기로 좌파는 이란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면서 지식인들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좌파의 가장 강력한 조직은 카루비가 이끄는 ‘투쟁하는 성직자들 연맹’(Majma-e Rouhanione Mobarez: MRM)이다. 또한 2001년에는 진보적인 성향의 콤 신학교 연구자 및 교사 연맹(Majma-e Mohaqqeqin va Modarrsin-e Howzeh-ye Elmiyyeh Qom)이 결성되어 좌파와 연대하고 있다.
좌파는 최고이슬람법학자의 합법성이 신과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권위가 헌법과 국민의 주권을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와는 다른 견해로 최고지도자의 절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선출하는 고위성직자로 구성된 ‘전문가 의회’(Majles-e Khobregan)는 헌법 제107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선출하고 헌법 제111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해임할 수 있기 때문에 좌파는 최고지도자의 권한이 제한적이어야 하며 국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한다.
사회문화적 자유에 대한 좌파의 견해는 상당히 관대하며 이슬람의 원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좌파는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다양한 견해 차이가 이슬람과 사회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좌파의 경제정책은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민간 부문이 공공 부문에 종속되어야 하며 주요한 자원과 공공재의 국유화를 강조한다. 좌파의 대외정책은 과거 철저한 반미주의와 이슬람혁명 수출을 강조했던 강경론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외전략이 대폭 수정되어 주변국과의 관계강화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지지하고 있다. 좌파의 지지기반은 개혁적인 성직자, 지식인, 여성, 중산층이다.
현대 우파: 중도파
현대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은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2017년 1월 8일 사망한 라프산자니 전임 대통령이다. 라프산자니는 1990년대 전통 우파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정치단체를 결성했다. 1996년 라프산자니 정부의 핵심 관료 16명을 중심으로 ‘이란 건설의 활동가들 연합’(Kargozaran Sazandegi-ye Iran)을 결성해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했다.
현대 우파는 2013년 6월 4일 제11대 이란 대선에서 로하니의 당선을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특히, 로하니의 당선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로하니는 좌파와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 우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나테케 누리(Ali Akbar Nateq-e Nuri)까지 결합해 광범위한 연대를 형성했다. 나테케 누리는 1997년 제7대 대선에서 전통 우파의 단일 후보로 출마해 하타미에게 패배했던 인물이다. 로하니는 2017년 5월 19일 제12대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해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했고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이슬람법학자통치론에 대한 현대 우파의 견해는 좌파와 매우 유사하다. 그들은 이란의 정치체제에서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공화제를 강조하고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헌법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치체제 내의 다원주의를 지지하며 대중의 정치참여가 합법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 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해서 현대 우파는 전통 우파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공공의 영역에서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이슬람공화국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정치체제를 강화시킨다고 믿는다. 현대 우파의 1차적 목표는 이란을 현대국가로 발전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란의 경제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상인 경제체제를 강조하는 전통 우파를 비판하면서 현대 우파는 현대산업에 기반한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한다. 그들은 1979년 이슬람혁명의 기본 원리를 지지하지만 이란의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위해 세계경제체제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전통 우파와 달리 현대 우파는 부의 재분배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현대 우파는 세계경제체제로 편입하기 위해 고립주의에서 탈피해 개방, 개혁 정책을 주창하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지지한다. 현대 우파의 지지기반은 전문직 종사자, 기업인 및 중산층이다.
신원리주의자: 강경파
신원리주의자의 상징적인 인물은 메스바헤 야즈디(Mohammad-Taqi Mesbah-e Yazdi)이다. 그는 아흐마디네자드 전임 대통령(2005년-2013년 재임)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알려져 있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폭력사용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초강경파 지도자이다. 신원리주의자는 민병대, 이슬람혁명수비대 및 안사레 헤즈볼라(Ansar-e Hezbollah)와 긴밀하게 연대하고 있다.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안사레 헤즈볼라의 지도자는 마수드 데흐나마키(Masoud Dehnamaki)로 엄격한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며 폭력투쟁을 주도하면서 급진적인 혁명 2세대를 조직화하고 있다.
신원리주의자는 서방의 문화적 침투를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이슬람 혁명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이슬람 혁명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고 이를 추종하기 때문에 ‘원리주의자’라고 불리고 있다. 신원리주의자는 좌파와 현대 우파를 반대하고 있고 그들의 서구화 정책과 도덕적인 부패로 인해 이란 사회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원리주의자는 아흐마디네자드 재임기간(2005년-2013년)에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2012년 ‘이슬람 혁명 영속 전선’(Jebhe-ye Paydar-e Enqelab-e Eslami)을 창설했다. 2013년 대선에서는 이란 핵협상의 대표였던 사이드 잘릴리를 지원한 바 있다.
신원리주의자는 전통 우파처럼 최고이슬람법학자의 리더십이 신에 의해 인정받았고 최고지도자의 권위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화제 없는 순수한 이슬람 제도를 선호한다. 그들의 견해로는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 사회문화적 자유에 대한 신원리주의자의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며 특히,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들은 모든 영역에서의 이슬람화를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의 재분배는 그들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2005년 제9대 대선에서 신원리주의자의 대선 후보인 아흐마디네자드는 강력한 이슬람사회를 위한 평등주의를 강조했고 빈곤 타파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거구호로 내세우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저소득층에게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과 지방을 방문해서 생필품을 배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동안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신원리주의자는 대외정책에서 뿌리깊은 반미주의를 강조하고 있고 다른 어떤 정치단체보다도 강력한 반서방 정책을 표방한다. 신원리주의자의 지지기반은 급진적인 성직자, 이슬람혁명수비대, 민병대, 안사레 헤즈볼라이다.
이란 핵협정 이후 2017년 이란 대선
2017년 5월 19일에 실시된 제12대 대선은 예상과 달리 매우 치열한 선거과정으로 전개되었다. 당초 로하니 대통령의 재선은 낙관적이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은 두 번의 예외(1대 바니 사드르의 해임과 2대 라자이의 암살)를 제외하고는 항상 재선에 성공했고 이는 재선 불패라는 명제가 되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란 핵 협정 폐기론과 재협정론을 제기하며 이란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란 핵협정은 선거과정에서 주된 쟁점이 아니었다. 로하니의 강력한 경쟁자인 에브라힘 라이시조차도 이란 핵 협정이 국제적 약속인 만큼 당선되어도 파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실업이나 빈곤 등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또한 세 차례 열린 대선 후보의 생방송 토론에서도 안보나 외교 문제보다는 오로지 경제 정책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이번 선거에서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라이시 후보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라이시는 이란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로 2006년 처음으로 전문가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시아파 호자톨에슬람(중간급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샤드 금요예배 지도자인 아흐마드 알람몰호다의 사위라는 이유로 전통 우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16년 3월 압바스 바에즈 타바시가 사망하자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그를 제8대 이맘 사원을 관리하는 이란의 최대 종교자선단체인 ‘아스타네 쿠드세 라자비’(Astan-e Quds-e Razabi)의 2대 의장으로 임명했다. 선거 결과 로하니가 5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라이시는 38%를 득표해서 2위로 낙선했다. 이번 선거에서 로하니의 득표율이 2013년 대선과 비교해 볼 때 6% 정도 높아졌다는 수치가 나왔다. 하지만 정치초년생인 라이시가 40% 가까이 득표했다는 것은 향후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대선이 치열해진 주된 요인은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과정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고령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2015년 전문가의회 내에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89년 6월 3일 호메이니 최고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하메네이는 현직 대통령이었고 6월 4일 전문가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찬성 60표, 반대 14표)로 2대 최고지도자로 선출되었다. 이는 최고지도자 후계 구도에서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이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이후 이란의 국내 정세
이란에서는 물가 폭등과 리알화(이란 통화)의 가치 하락 등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과거의 시위와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시위는 중산층에 의해서 테헤란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일어났지만 2017년 12월 28일부터 1주일간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기점으로 시위의 주도세력과 중심지가 바뀌었다. 최근의 시위는 과거의 대도시 중심에서 보수적인 종교 도시와 지방 도시로 바뀌었고 시위의 중심 세력 또한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이동했다. 생활고와 경제난이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였기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하층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유권자와 하층민은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의 주요 지지기반이다.
메릴랜드 대학교 국제안보연구소가 1월 16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란인들 58%가 현재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대답했다. 이는 2015년 8월 실시한 조사에서 나타난 28.5%에 비해 2배 이상 높아졌다. 가장 흥미로운 조사 결과는 인기 있는 인물로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인 쿠드스(Quds) 여단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가 1위(82.7%)를 차지했고 2위(65.5%)는 로하니 대통령이다. 서방언론에서 ‘그림자 사령관’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솔레이마니는 1998년부터 쿠드스 여단 사령관을 맡고 있고 20년 넘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201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과 막후 협상을 담당했고 2015년 7월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이란과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의 공조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까지 이란의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가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서 이란 경제가 크게 악화되었고 또한 전국적인 시위로 인해서 이란 정국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란 국민들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인물로 반미 성향의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란의 정국이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이란의 역사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는 외부세력과의 연계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경제 위기의 파장 속에서 군부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 위기로 인해 커다란 정치 위기에 빠졌다. 이란 의회는 경제난의 책임을 물어 8월 8일 노동부 장관에 이어서 8월 26일에는 재정경제부 장관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란 의회는 8월 28일 로하니 대통령을 불러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의회에서 공개 질의를 받은 것은 2013년 취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8월 13일 테헤란에서 열린 대중 연설에서 미국의 제재 보다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가 민생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로하니 정부를 비판했다. 이는 이란 경제 위기의 원인을 로하니 정부와 부패 관료로 전가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된다. 심지어 일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탄핵까지 주장하고 있다. 실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로하니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이란의 이슬람 정치 실험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이후 이란 내부의 권력투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는 로하니 정부를 흔들어 지지기반을 만회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와 차기 최고지도자 선출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의 전략으로 보인다. 로하니 정부는 이러한 전략에 맞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팀(재정경제부, 노동부, 산업광물통상부, 도로•도시개발부 장관)을 개편하는 한편 미국의 제재에 대항한 범국민 연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10월 27일 의회에 출석해 적들이 경제 위기설을 조장해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모두 단합해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란의 정치 지형은 기본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및 외교를 둘러싸고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이란 정치체제의 토대인 이슬람법학자통치론에 대한 시각에서는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다. 전통 우파와 신원리주의자는 최고지도자를 이맘(Imam)[1]의 대리인으로 규정하면서 신성한 지위를 가진 절대 권력의 상징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이슬람범학자통치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더 나아가 이슬람법학자절대통치론(Velayat-e Motlaq-e Faqih)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좌파와 현대 우파는 최고지도자가 헌법에 의거하여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그의 지위는 국민의 뜻을 충실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이란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개혁운동은 반이슬람적이고 세속적인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슬람 내에서 보다 더 자유롭고, 보다 더 개방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이슬람 정치실험을 의미하고 있다. 앞으로 이란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통해 이슬람법학자통치론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전개될 것이다.
저자 소개
유달승 교수(dsyu@hufs.ac.kr)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이다. 이란 테헤란대학교 법정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이란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동정치, 이슬람주의, 이란 정치사상, 한-이란 외교사 등을 진행하고, 주요 저서로는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중동은 불타고 있다』,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1] 이맘은 시아파에서 이슬람공동체의 최고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특별한 중재자이자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영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시아파의 이맘은 알리(Ali)와 그의 11명의 직계 남자 후손이다.
참고문헌
- Arjomand, Said Amir. 2009. After Khomeini: Iran Under His Successo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 Buchta, Wilfried. 2000. Who Rules Iran? The Structure of Power in the Islamic Republic. Washington, DC, 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 Mohammadi, Majid. 2015. Political Islam in Post-Revolutionary Iran: Shi’i Ideologies in Islamist Discourse. New York, I.B.Tauris.
- Moslem, Mehdi. 2002. Factional Politics in Post-Khomeini Iran. New York, Syracuse University Pres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