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로마 주재 오만 대사관에서 미국과 이란의 고위급 핵협상이 다시 열렸다. 트럼프 1기 정부가 2018년 핵합의(JCPOA)를 파기한 지 7년 만이다. 협상장 풍경은 기묘했다. 양측은 마주 앉지 않고 오만 측 중재자를 통해 입장을 전달했다. 이 불편한 거리감은 단지 외교적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불신의 깊이를 드러낸다. 협상 테이블에서 양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미국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이란은 농축이 국가 주권의 문제로 ‘협상 불가’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협상 실패 시 군사 행동을 위협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선제타격은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지난해 방문한 이란 테헤란 거리마다 여전히 솔레이마니의 거대한 초상화가 건물마다 걸려 있었다.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암살은 단순한 군사 작전을 넘어 이란 정체성에 대한 직접적 타격으로 국민에게 각인돼 있다.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있는 순교자로 추앙받는 그의 존재는 이란의 깊은 상처와 미국에 대한 불신을 상징한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는 현재의 외교적 시도가 실패하면,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공식 탈퇴해 자국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 감시를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왜 트럼프는 파기한 핵합의 협상을 다시 시작했을까? 일각에서는 그의 협상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있다. 동시에 미국 내 고조되는 대이란 군사적 충돌 우려도 협상 재개 동력이 됐다. 이란은 이미 한 번 일방적으로 파기된 합의에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에 핵 프로그램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과 주권의 상징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상징적 의미가 합의 도출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제 문제는 이란과 미국만의 갈등을 넘어 중동 전체 질서 재편과 직결된다.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국교 정상화, 시리아 재건 협상, 가자지구 휴전은 모두 미국이 아닌 중국·러시아·카타르 등의 중재로 이뤄졌다. 미국의 일관성 없는 대외정책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불신은 깊어졌고, 자율적 안보 구도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은 선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다극적인 외교 질서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25년간의 포괄적 협력 협정을 중국과 체결했고, 러시아와도 군사·경제적 유대를 강화했다. 걸프 국가들도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모습이다.

결국 이번 로마 협상은 단지 핵합의 복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깨진 신뢰를 외교적으로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 강압적 외교가 장기적 해법이 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다. 장기적으로는 단기적 정치 이익을 넘어선 일관된 정책과 국제적으로 검증 가능한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 한쪽의 약속 파기가 상대의 강경 대응을 불러오고, 이것이 다시 더 깊은 불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확실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 다시 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외교란 언제나 불완전한 타협의 예술이다. 반복된 실패 끝에도 대화를 택했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길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원문: [국제칼럼] 트럼프, 이란 상대 ‘되감기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