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의 전쟁 긴장 완화와 평화의 열쇠는 언제나 워싱턴 손 안에 있었다.
미군이 2019년 2월 텍사스주 Fort Bliss에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포대를 화물기에 탑재하고 있다. (AP/연합)
시아바시 사파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부교수
테헤란에 살고 있는 70세 모친은 요즘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동 곳곳으로 번진 전쟁의 불길이 이란에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요즘 여타 이란 국민들이 그러하듯 최선을 고대하는 동시에 최악을 대비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마치 내 정치학 학위가 미래를 내다 볼 수정 구슬인 것처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물어보신다. 하지만 내 학위엔 그런 능력이 없고, 아마 그게 다행일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평화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는 것은 신념에 의존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전면전 가능성은 지난 1년간의 끔찍한 폭력 사태를 배경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자지구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한때 ‘중동의 진주’로 불리던 베이루트 역시 여러 동네가 폐허로 변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Yoav Gallant)는 최근 이란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고 암시하며, 테헤란을 ‘뱀의 머리’라고 부르는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의 오랜 입장을 반영한 위협을 내놓았다. 한편 이란의 관료들 또한 이스라엘의 추가적인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묵시하지 않고 불과 분노로 맞설 것이라 경고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여러 국면을 거쳐왔다. 팔라비 왕조 시절의 이란은 무슬림 국가 중 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국가 중 하나였다. 1960년대에는 두 국가 간 경제적, 군사적, 정보 관련 협력이 강화되었지만, 70년대에 들어서는 지정학적 변화로 인한 상호 불신이 커지기 시작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란은 아랍 국가들을 지지하며 그들에게 기술 및 의료 지원을 제공했고, 이듬해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단행했다. 그 무렵은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팔라비 왕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꿈은 중동 내에서 이스라엘의 핵무기 독점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반-이스라엘 정서는 이란 정치에 영구히 고정되었다. 물론 이러한 수사(修辭)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란이 비밀리에 이스라엘부터 무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러한 비밀 거래들을 통해 이란은 1979년 미국이 부과한 무기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밀수는 이스라엘에게도 이익이 되었는데, 당시의 가장 큰 적이던 이라크를 약화시킬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이란의 정보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라크가 1991년에 핵무기 보유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자 이스라엘은 다시 이란에 눈길을 돌렸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이르면 1992년 초, 당시 국회의원이던 네타냐후는 이란이 핵보유국이 될 위협을 사전에 차단할 것을 미국에 촉구했다. 4년 후 총리가 된 네타냐후는 이란이 “핵무기 획득에 매우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이란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던 참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되자 이란은 핵 개발을 서둘렀다. 이에 미국은 이란에 더 강력한 제재와, 2010년 이란 내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과의 공동 사이버전 공격 등으로 대답했다.
재래식 군사 전력으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한 이란은, 소위 ‘저항의 축’을 강화하는 억제 전략을 꾀했다. 이란 내 반-이스라엘 및 친-팔레스타인 정서는 이러한 전략을 지역에 확산시키기에 용이했고, 또한 국내 반대파를 탄압하는 명분으로 작용됐다. 반대 시위가 발발할 때마다 반대 의견은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안보 위협이라는 프레임 하에 국가가 강력한 진압에 나섰다.
현재 상황으로 돌아와 논해보자면, 이란이 중동 지역 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싶어할(확전에 관심이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일련의 반정부 시위가 정치적 정당성에 위기를 불러왔고, 수십 년간 이어진 혹독한 국제 제재와 정부 실패의 결합으로 경제는 황폐해졌다.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은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이 모든 무기를 내려놓겠다면 우리도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물론 이러한 발언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습하여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 헤즈볼라 사무총장과 아바스 닐포루샨(Abbas Nilforushan) 이란 장군을 살해하기 전에 나온 것이었다. 베이루트 공습과 앞서 이란 본토 내에서 벌어진 이스마일 하니야(Ismail Haniyeh) 하마스 정무국장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약 200발의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발사한 후, 이란은 이스라엘이 추가적인 보복을 하지 않는 한 “대응은 종결되었다(concluded)”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은 다르다. 중동 지역 정세의 판도를 바꾸고 자신들을 지역내 확고한 패권 국가로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을 기회로 보고 있을 수 있다. 나프탈리 베네트(Naftali Bennett ) 이스라엘 전 총리 는 최근 X(구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중동 정세를 바꿀 절호의 기회를 50년 만에 맞이했다.”고 작성했다. 이란과의 전쟁 긴장의 고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가자지구에서의 대량 학살로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고, 서안지구에서의 불법 정착촌 건설을 계속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네타냐후에게 끝없는 전쟁은 권력을 유지하고 부패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처벌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현재의 국면을 타개할 방도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그간 간헐적으로 긴장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사실상 네타냐후에게 자유를 허용해주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179억 달러(한화 24조 8900억)에 이르는 막대한 군사 원조를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는 미국은, 네타냐후에게 휴전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할 힘을 분명 가지고 있다.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이, 레이건 행정부는 1982년 베이루트에서의 이스라엘군 철군을 강요하기 위해 군사 원조를 제한한 적도 있다. 이러한 정책이 중동 분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1991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일시적이나마 중단한 사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중동의 긴장 완화와 평화로 가는 열쇠는 언제나 워싱턴의 손에 있었다. 이제 문제는, 워싱턴이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정세 변화를 위한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학살의 길을 지원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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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심성환
이 논평은 집필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서 번역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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