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방문기
알자지라(Al-Jazeera) 방송국 방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한창이던 올해 1월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알 자지라 방송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알 자지라 방송국 출입은 삼엄한 경비와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가능했다. 특히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에서의 알 자지라 기자들에 대한 공격과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언론인들에 대한 공격은 중동 각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하에 위치한 알 자지라 방송국 안에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돌았다.
나의 긴장감이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바뀐 것은 알 자지라 아랍어 방송국 입구에 있는 시린 아부 아클레의 모습을 보고 나서이다.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사진이 #JusticeForShireen이라는 표어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시린 아부 아클레는 아랍계 기독교인이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알자지라 방송사의 기자로 20년 넘게 팔레스타인 분쟁의 참상을 알려온 이였다.
시린 아부 아클레의 죽음은 전쟁과 미디어의 복잡한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시린 아부 아클레는 2022년 5월 11일, 팔레스타인 난민촌 제닌에서 이스라엘 군사 작전을 취재하던 도중 이스라엘 병사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PRESS’라고 명확히 표시된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이 비극은 전쟁 지역에서 언론인의 안전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22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래, 팔레스타인은 언론인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알자지라의 기자 두 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표적 공급에 의한 사망이었다. 알 자지라 알 고울 기자와 카메라맨 라미 알리피는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다 공습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기자협회는 취재 업무 중에 사망한 기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전쟁 범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까지 113명의 언론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들의 죽음은 곧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가자 전쟁. 사실 파악하기. 당신의 권리, 우리의 의무”
한편, 올해 4월 1일 이스라엘 의회는 일명 ‘알자지라법’을 제정하여 가결했다. 이는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는 외국 언론사의 취재, 보고를 정부가 강제로 금지할 수 있는 법으로, 외국 방송사의 방송을 중단시키고 웹사이트 접속 차단과 지국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알자지라 방송을 하마스의 대변인 방송이자, 테러범의 채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알자지라에 대한 표적 법안이 가결되었는가?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은 “하나의 의견, 또 다른 의견” 이라는 모토 아래, 상대적으로 언론의 통제가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중동에서 성역 없는 보도로 지각변동을 일으켜왔다. 서구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아랍 정부에 대한 논쟁적인 견해를 가감 없이 방영해, 카타르 단교 사태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국가들이 외교 관계를 복원하는 조건 중 하나가 알자지라 폐쇄일 정도로 논쟁적인 언론매체로 기능해왔다. 서로 상방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예민한 문제로 논쟁하는 <반대방향(The Opposite Direction)>이라는 생방송 토크쇼는 알자지라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알 자지라 아랍어 방송은 2022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래,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전쟁 특집으로 편성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서구 중심적 보도에 대안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보다 팔레스타인 측의 입장을 더욱 깊이 있게 다룬다. 가자 지구 등 분쟁 지역의 현장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너무나 생생하게 가자 지구 현장을 전달해서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알 자지라 방송이 전하는 팔레스타인 현장은 참혹하기만 하다. 거의 유일하게 중동의 목소리를 생생하고 비교적 균형 있게 전달하는 글로벌 미디어 기관이기 때문에, 알 자지라는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 밖에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오늘도 위험한 현장을 지키고 있다.
2024년 8월 기준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3만명을 넘었다. 작년 10월 이래, 알 자지라 방송의 소셜미디어는 참혹하지만,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을 미디어 중 유일하게 참상들을 알린다. 이와 같은 알 자지라 방송의 힘은 이스라엘 정부에게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1월 알자지라 방송국 내에서 마주치고 대화를 나눈 다양한 배경과 국적의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뉴스룸과 밖에서 만난 앵커, 기자, 제작자들, 그리고 방송국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슬픔과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알 자지라 방송국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팔레스타인 출신 관계자는 고국의 소식을 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격한 감정을 내비추었다. 하지만 알 자지라의 역할과 공정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자지라가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다루지 않는, 아니 다루지 못하는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왜 팔레스타인에 편향적인 목소리로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또한 알자지라가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때문에, 반대편의 시각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알 자지라 방송국의 곳곳에 “가자 전쟁. 사실 파악하기. 당신의 권리, 우리의 의무”라는 슬로건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전쟁의 현실과 사실, 그리고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보도해야하는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