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숙한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랍어로 ‘1001개의 밤’이라는 제목의 민담이다. 이 글에서는 이 민담의 제목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고, 이 민담들을 기록한 책을 가리켜 『천일야화』로 부른다. 『천일야화』는 오랜 세월 광활한 지역에 걸쳐 이야기가 전해지고 덧붙여져 15세기가 되어서 오늘날의 형태로 고착되었다. 『천일야화』를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어로 번역한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이다. 그의 번역으로 『천일야화』는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아랍을 대표하는 문학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그 후 아랍 세계는 『천일야화』에 관심을 보였고, 『천일야화』는 오늘날 아랍의 대표 민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랍인은 아랍의 대표 문학 작품을 말할 때, 선뜻 『천일야화』를 꺼내지 않지만, 아랍 세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천일야화』가 끼친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글은 이런 양가적 태도의 원인과 『천일야화』가 문학, 문화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룬 지대한 영향을 확인한다.
김정아(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민담은 민간에서 구술 및 전승되는 이야기의 총칭, 혹은 설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를 가리킨다. 민(民)은 기층의 서민을 말하고 담(譚)은 이야기를 말하므로, 민담은 오랜 세월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반영한 서민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아랍의 민담’ 또한 아랍인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반영한 서민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랍인에게 이야기는 어떤 의미일까? 고대 아랍인에게 이야기는 척박한 환경의 삶에 한 줄기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시리아 출신 독일 이주작가 라피끄 샤미(Rafik Schami)에 의하면 아랍인이 이야기를 즐기고 타고난 이야기꾼이 된 이유는 아랍 사막의 단순함에서 기인하며, 아랍인과 이야기는 필연적 운명의 결합체라고 말한다(김정아 2021, 226). 아랍인이 사랑하는 대표적 민담으로는 『안타라 영웅담』, 『주하 이야기』, 『천일야화』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아랍의 민담’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천일야화』다. 그래서 이 글은 『천일야화』가 명실공히 아랍의 대표 민담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영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베이루트의 al-Dār al-Namūdhajiyyah Liṭṭibā‘ah wa al-Nashr 출판사가 2002년 출판한 『천일야화』 전 4권 중 4권의 표지이다. 4권은 589번째 밤부터 1001밤까지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왼쪽부터 샤흐라야르 왕, 샤흐라자드, 샤흐라자드의 여동생 둔야자드, 샤흐라자드의 아버지인 대신이다.
아랍의 민담, 『안타라 영웅담』과 『주하 이야기』
안타라 븐 샷다드(‘Antarah bn Shaddād)는 자힐리야 시대의 시인이자 용맹한 영웅이다. 그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압스(‘Abs) 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아비시니아 출신 노예였다. 어머니가 노예인 탓에 그 역시 노예 신분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전쟁터에 나가게 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부족민을 구했다. 그는 사촌 아블라(‘Abla)와 결혼했는데, 안타라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고, 시에도 언급되어 있다. 안타라의 시는 아랍 시집의 보고라 불리는 『무알라까트』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전투, 갑옷, 무기, 말, 사막 등에 관한 상세한 묘사(al-Waṣf)로 유명하다. 안타라는 아랍의 전설적 영웅으로 전해지는데, 그가 고귀한 압스 부족 출신이라는 사실보다는 그가 지닌 미덕과, 그 미덕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그의 삶 때문이다(EAL, 94). 그는 실존 인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랍 이야기꾼에 의해 덧붙여졌다. 오늘날에도 아랍의 카페에서는 전통적인 이야기꾼이 안타라 영웅담을 암송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은 『안타라 전기(Sirah ‘Antara)』에 수록되어 있다.
『무알라까트』의 표지에 실린 안타라의 모습
주하와 당나귀
주하(Juḥā)는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적 인물처럼 전래되는 인물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모음집이나 이야기 한 편을 담은 소책자 형태로 대부분 아동도서이다. 주하는 매사에 우스운 답을 내어놓는데, 바보인 듯 보이다가 현명한 철학자인 듯 보여서 그 구분이 어렵다. 아랍인 누구라도 주하를 언급하면 우선 입가에 미소가 번질 만큼 그는 모든 아랍인에게 사랑받는 인물이다. 대표적인 이야기로 ‘주하와 당나귀 이야기’가 있다.
주하가 당나귀를 잃어버렸다. 이웃 사람이 그에게 당나귀를 잃어버려서 얼마나 상심이 크겠느냐 하면서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주하는 이렇게 답한다. “생각해보게.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타고 있었더라면, 나도 잃어버렸을 것 아닌가?”
아랍세계에서 아동 도서로 『주하 이야기』만한 것이 없다. 아랍인 주하가 튀르키예에서는 나스르딘 호자(Nasrudin Hoj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의 내용은 아랍인 주하와 대동소이 하다.
『천일야화』, 인도와 페르시아를 거쳐 아랍의 이야기로
『천일야화』는 아랍어로 ‘1001개의 밤(’Alf laylah wa Laylah)’이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구전으로 전해진 이 민담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틀 이야기’의 서술 구조를 지니고 있다. 도입부와 큰 이야기, 중간 이야기, 작은 이야기 등이 내포된 본화 그리고 종결부로 이루어져 있다. 도입부에서는 샤흐라야르 왕이 아내의 외도를 발견한 후 아내를 죽이고, 여자를 적대시하게 되어 매일 처녀를 하룻밤 품고 처형하게 된 사건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샤흐라자드가 왕에게 가서 밤 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는 내용이 있다. 종결부에서는 1001번째 밤이 되어 샤흐라자드는 왕에게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말하고, 덧붙여 왕의 세 아들을 가졌다고 알린다. 아이들 중 한 명은 걷고, 한 명은 기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 젖먹이였다. 왕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샤흐라자드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천일야화』는 “코란이나 다른 어느 아랍 문학작품보다 유럽에서 훨씬 인기가 있었던”(니콜슨 1995, 602) 아랍 문학 작품으로, 서구문학과 문화 콘텐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후 그 문학적 위상이 아랍세계로 전해졌다. 『천일야화』는 이야기 모음집으로 영어 제목은 Arabian Nights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으로 영국에 소개되었을 때, 『아라비아 밤의 오락(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s)』이라고 불리는 데서(김영연 1996, 4) 비롯되었다.
『천일야화』 이야기의 근원지를 인도로 보는 이유는 이야기의 전개 구조와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동물화나 변신 모티브로 불교의 윤회 사상의 잔재”(김영연, 앞의 책, 6)때문이다. 『천일야화』의 원전은 페르시아의 이야기 모음집인 『천개의 이야기(Hazār afsāna)』다. 『천일야화』는 『천개의 이야기』가 압바스 시대 아랍어로 번역된 후 인도와 페르시아 배경의 이야기에 바그다드와 카이로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다양한 문화가 이슬람 문화로 변용된 결과물이다. 즉, 인도와 페르시아 문화가 내재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이슬람 문화가 곳곳에 채색되어 거대한 이슬람 문화로 동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은 세 종류로 대별되는데, 우선은 『천개의 이야기』에 수록된 이야기가 있고, 다음으로는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칼리파 하룬 알라시드가 자주 등장하는 “해학적 일화와 연애담”(니콜슨 1995, 605)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카이로를 배경으로 “짓궂고 풍자적인 익살과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서처럼 완벽하게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초자연력 숭배”(앞의 책, 605)가 부각되는 이야기가 있다. 『천일야화』는 15세기가 되어서야 현재의 형태를 지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일야화』에서 샤흐라자드는 1001일 동안 밤마다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하루 밤에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샤흐라자드가 한 이야기는 총 270편(이동은 2012, 91)으로 추정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밤의 시작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천일야화』 불락(Bulāq) 본 표지
『천일야화』의 출판과 번역
19세기가 되어서야 『천일야화』의 아랍어 텍스트가 출판되기 시작했다. 『천일야화』는 인도의 캘커타(1839-42 출판), 이집트의 불락(Būlāq, 1835), 폴란드의 브로츠와프(Breslau,1825-43),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1888-90)에서 출판되었다(Goldziher 1966, 89-90). 한편 불락 본에 대한 학계의 신뢰가 두터워서, 고전 작품의 영인본을 연구하는 경우 보통 불락 본을 원본으로 택한다. 『천일야화』 불락 본은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 번역본의 경우,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천일야화』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다. 그의 번역서는 12권 전집으로 1704년부터 1712년까지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이를 『천일야화』 번역본에 넣은 탓에 원래 이야기가 아닌 것들이 포함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다. 이후 1세기 동안 이 프랑스어 번역본이 서구 문학의 정전으로 간주되었다(Goldziher 1966, 89).
영어 번역본의 경우, 리차드 F. 버턴(Richard Francis Burton) 경이 The Book of the Thousand Night and a Night: A Plain and Literal Translation of 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s라는 제목으로 1888년 『천일야화』를 번역하였다. 그는 영국의 탐험가이자 학자로 메카를 순례한 이력이 있는 동양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국내에서는 버턴 경의 영어본을 김병철이 번역한 『아라비안 나이트』가 1992년 범우사에서 총 10권으로 출간되었고, 이 본이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갈랑의 프랑스어 본을 임호경이 번역한 『천일야화』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총6권으로 출간되었다.
유옥역전, 1895
한편, 1895년 ‘유옥역’이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름을 딴 『유옥역전』이 필사본의 형태로 등장했는데, 이것이 『천일야화』의 한국어 번안본이다. 역자는 알 수 없고, 일본어 번역본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은 『천일야화』의 도입부 이야기인 왕비의 불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큰 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김영연1996, 25).
『천일야화』의 등장 인물
『천일야화』의 등장 인물로는 왕, 샤흐라자드, 재상, 상인, 하인, 노예, 진느(마신), 다양한 동물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신, 샤흐라야르 왕 그리고 샤흐라자드에 대해서 소개한다.
(1). 진느, 마법을 부리는 초자연적 존재
「상인과 마신 이야기」, 불락 본
서구의 표기를 통해 ‘지니’로 알려진 ‘진느’는 마법을 부리는 마신으로, 알라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분되어 있다. 이븐 칼둔(Ibn Khaldūn)에 의하면, 인간 마술사가 저주를 위한 주문을 외울 때도 마신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i] 마신은 인간을 돕는 선한 마신과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마신이 있는데, 『천일야화』에서 마신은 사건을 일으키거나 해결하는 등 이야기 전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마신은 『천일야화』 도입부 이야기에서부터 등장하는 주요인물이다.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샤흐라야르 왕은 같은 아픔을 지닌 동생과 길을 떠난다. 두 사람이 길을 가던 중 갑자기 광풍이 불고 커다란 마신이 나타나자 두 사람은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긴다. 나무 근처로 온 마신은 자리를 잡고 앉아 큰 상자 속에서 작은 상자를 겹겹이 꺼내고 마지막 상자에서 인간 여자를 꺼내고 잠을 청한다. 그 여자는 결혼식 전날 마신에게 납치되어 제일 깊숙한 상자 속에서 갇혀 있었다. 이렇게 마신은 인간 여성을 탐하고, 아내로 맞이하기도 한다. 마신은 「상인과 마신 이야기」에서도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마신은 괴력을 지니고 초자연적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사람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지니
마신이 부리는 마법은 『천일야화』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이다. 우리는 해리포터의 마법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천일야화』에서 마신이 마법을 부리는 이야기를 읽어 본사람이라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K.롤링(J.K. Rowling)이 『천일야화』를 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천일야화』에는 마법에 걸려 변신하는 동물과 사람 그리고 마신의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2). 샤흐라야르 왕, 이야기로 치유되다
샤흐라야르 왕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여성에 대한 증오로 나라 안의 처녀를 하루 밤만 품고 죽이는 사이코패스같은 인물이다. 이렇게 잔인한 그가 샤흐라자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게 된다. 그는 『천일야화』라는 대서사를 시작하는 인물로 여성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인을 서슴지 않지만,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들은 대가로 샤흐라자드의 목숨을 살려준다. 결국 1001일 동안의 이야기가 그가 지닌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치유한 셈이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점차 인간다운 모습으로 회복하게 되는데, 이는 이야기의 힘을 증명한다.
(3) 샤흐라자드, 이야기로 목숨을 구하다.
샤흐라자드는 『천일야화』의 전체 이야기를 주도하는 이야기꾼으로 왕의 마음을 치유하는 심리 치료사 역할을 한다. 그녀는 당시 아랍 세계에서 주로 남성이 이야기꾼이었던 관습을 깨고 여성 이야기꾼으로 등장한다. 샤흐라자드의 아버지인 재상은 왕의 명령으로 매일 왕과 하룻밤 같이 지낼 신부를 데려갔는데, 3년이 지나자 백성들의 원성이 커졌고, 대신은 곤경에 처했다. 샤흐라자드는 아버지를 돕고자 자신이 왕에게 가겠다고 자청한다. 그녀는 여동생 둔야자드를 데리고 왕에게 가서,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절정에 이를 때 다음 날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식으로 목숨을 연명한다. 밤이 되면 둔야쟈드는 왕의 침상 아래에 앉아 샤흐라자드에게 말한다. “언니, 어제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해 줄 수 있나요?”라고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샤흐라자드는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여성이고, 살인을 일삼는 왕을 이야기로 치유하는 인물이다. 샤흐라자드 뿐 아니라 많은 여성 인물이 『천일야화』의 이야기에서 사건을 주도한다. 예를 들자면, 「짐꾼과 여자들 이야기」에서 공주는 마법에 걸려 원숭이가 된 왕자를 구하기 위해 마신과 필사적으로 싸운다. 마신은 사자, 전갈, 독수리, 고양이, 벌레로 변신하는데 이에따라 공주는 뱀, 독수리, 이리로 변신하여 마신과 대적하고 결국 마신을 재로 만든다. 「여종 타왓두드」 이야기에서 타왓두드는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여성으로 뭇 남성들과 학문을 겨루는데, 그 대가로 옷을 하나씩 벗는 내기를 한다. 그녀의 집을 나서는 남성들은 모두 벌거숭이가 된 상태였다.
아랍인은 『천일야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일반적으로 아랍 문학을 논할 때 『천일야화』가 아랍 문학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는 『천일야화』가 서구에서 유명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천일야화』는 서구에서 먼저 유명해지고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 후 아랍세계에서 『천일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아랍의 문학 작품이 서구에서 먼저 인정받고 그 후 아랍 세계로 역수입된 상황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천일야화』는 ‘언어와 표현의 빈곤함 그리고 천박한 내용’(Cachia 2002, 80) 때문에 아랍 지식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언어와 표현의 빈곤함’은 『천일야화』가 정확한 아랍어와 수사적인 문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한다. 구전 민담인 『천일야화』는 대중의 언어로 전해졌다. 대중의 언어는 문어체 아랍어가 지닌 문법의 정확함과 세련된 수사법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어체 아랍어와 풍부한 수사법으로 쓰인 것을 ‘문학’이라고 생각하던 아랍인에게 『천일야화』가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실제 필자는 『천일야화』 불락 본의 일부 이야기를 한국어로 번역한 경험이 있는데, 아랍어의 문법적 오류가 많았고, 압바스 시대 산문 작품의 특징인 풍부한 수사법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천박한 내용’은 『천일야화』의 선정적 내용을 말한다. 지나친 성적 묘사나 인간과 마신의 결합과 같은 것이 천박하고 타락한 내용으로 간주될 법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랍어’에 있다. 아랍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대 아랍시와 중세 산문 작품에도 선정적인 내용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정적 내용이라도 수사법으로 가득한 문어체 아랍어와 구전을 기록한 아랍어의 품격이 다르다는 인식에서 이 문제도 비롯된 것이다.[ii]
아랍인들이 『천일야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례를 들어보자. 아랍 무슬림들은 대소사를 결정해야 할 때 자신의 선택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점은 없는지 자문을 구하곤 한다. 이런 자문의 결과를 ‘파트와(Fatwā)’라고 하고 자문을 내리는 이를 ‘무프티(Muftī)’라고 한다. 『천일야화』와 관련한 파트와 하나를 소개한다.
질문: 교사가 제 아들에게 『천일야화』를 사오라고 했는데, 제가 보니 이 책에는 성적 묘사가 가득한데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무프티: 그 책은 읽지 말아야 할 타락한 책입니다. 『천일야화』는 타락한 책이니, 무슬림은 그 책을 읽는데 시간을 써서는 안 됩니다.[iii]
『천일야화』, 세계문학에 큰 영향을 주다
아랍세계에서 『천일야화』가 서구에서 인정받는 만큼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천일야화』가 지닌 문학적 역량 즉, 아랍문학 뿐 아니라 세계문학에 영향을 미친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세계문학사상 『천일야화』가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내러티브의 기교 중 하나인 ‘틀 이야기’이다. 『천일야화』의 틀 이야기는 14세기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과 초서(G. Chaucer)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틀 이야기’는 서양 문학 작품에서 전형적인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마찬가지로 『천일야화』는 아랍 산문 문학에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도입부 형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천일야화』에서 샤흐라자드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축복받은 왕이시여,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형태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 이야기의 출처까지 언급한다. 이런 도입부가 『천일야화』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고정된 형태의 도입부 반복은 아랍 산문 작품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9세기 아랍 산문의 대가 자히즈(al-Jāḥiẓ)의 『수전노』를 들 수 있다. 자히즈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아무개가 이렇게 전했다”라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중세 아랍 산문의 한 장르인 마까마(Maqāmah)[iv]는 이렇게 고정된 도입부의 반복을 주요 특징으로 보인다. 10세기 하마다니(al-Hamadhānī)가 쓴 『마까마』의 경우, 하마다니는 52편의 모든 마까마에서 “이사 븐 히샴이 우리에게 말했다”라고 시작하고, 11세기 하리리(al-Ḥarīrī)가 쓴 『마까마』의 경우, 하리리는 50편의 모든 마까마에서 “알하리쓰 븐 함맘이 우리에게 말했다”라고 고정된 도입부를 반복한다.
나집 마흐푸즈의 Arabian Nights and Days
이 밖에도 『천일야화』의 영향은 아랍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1001’이라는 숫자나 ‘샤흐라자드’, ‘진느’라는 명칭은 문학 작품이나 문화 콘텐츠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문학 작품의 경우, 이집트 작가로 198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나집 마흐푸즈(Najīb Maḥfūẓ)의 소설 Arabian Nights and Days(Layālī ’Alf Laylah)를 들 수 있다. 제목부터 『천일야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은 1001일 밤이 지난 새벽 샤흐라자드의 아버지가 딸의 생사를 걱정하며 왕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샤흐라자드는 아버지에게 왕이 살려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아버지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내 자신은 왕의 피냄새가 싫다고 말한다. 이 소설의 샤흐라자드는 『천일야화』의 샤흐라자드처럼 왕에게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다른 인물로 재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마흐푸즈 특유의 존재론적 질문의 집합체로 인간 세상에 대한 ‘성찰’(윤현호 2018, 98)이 서사를 이끌어 간다. 두 번째 소설은 시리아 작가 라피끄 샤미(Rafik al-Shāmi)의 『1001개의 거짓말』을 들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매개체이다. 이 작품은 『천일야화』의 틀 이야기를 모방하고, ‘이야기라는 모티브가 현대 소설에서 굴절되고 수용’(김정아 2015, 224)되었음을 보여준다.
1001 Inventions, 영국 기반으로 이슬람 문명을 알리는 비영리의 과학, 문화유산 조직 사이트
문학 작품 이외에도 『천일야화』가 사용된 매체는 알라딘 영화와 뮤지컬, 스포츠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카타르는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서 샤흐라자드와 마신 진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영국을 기반으로 이슬람 문명을 알리는 비영리의 과학, 문화유산 조직 사이트(https://www.1001inventions.com/)는 ‘1001 Inventions’로 명명되었다. 심지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천일야화』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천일야화 젤라또>를 파는 오만의 아이스크림 상점, ‘열려라 참깨’라고 쓰여있다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매력
이제까지 우리가 아랍의 대표 민담으로 알고 있는 『천일야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보았다. 『천일야화』가 아랍 세계에 정착된 과정, 번역, 인물 그리고 아랍인은 『천일야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천일야화』의 영향을 문학과 문화 콘텐츠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서술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가 지니는 힘은 단연코 재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은 어찌나 대단하던지! 마신과 샤흐라야르 왕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 보상으로 죽이려던 사람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신과 싸우고, 난관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고, 불운을 견디고 승리를 쟁취하는 능동적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샤흐라자드를 비롯한 여성 인물의 능동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아랍문학작품 중에서 『천일야화』보다 아랍어나 수사적으로 탁월한 작품들이 많지만, 재미와 세계적 인지도면에서 『천일야화』를 능가할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천일야화』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상상의 공간이고, 꿈을 실현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아랍의 대표 민담인 『천일야화』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페르시아를 거치고, 아랍 세계에서 그 열매를 맺었다. 9세기 당시 압바스 시대가 다문화, 다인종을 포용하고 공존을 추구했다는 시대정신을 돌이켜보면, 『천일야화』가 아랍의 민담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이야기 문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저자소개
김정아(rhaon0819@gmail.com)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 아랍어과와 통번역대학원 특임강의 교수이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9세기 아랍 산문작가 자히즈의 『수전노』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이슬람의 답습 전통과 아랍문학의 형식 전통의 교차점, 압바스 시대 번역 작업과 문예 활성화의 상관 관계이다. 현재는 아랍 소설에 나타난 ‘이주’를 분석하고, 경계에 선 타자를 문화 혼성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천일야화』와 『1001개의 거짓말』의 상호텍스트성 연구”(2015), “『무깟디마』에 나타난 아싸비야 연구”(2017), “마까마의 발전: 하리리 마까마를 중심으로”(2022)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수전노』(2007), 『한 밤의 지도』(2012), 『무깟디마』(2020)가 있다.
[i] 이븐 칼둔의 『무깟디마』, 6부 28장 마술과 주술의 학문 참조.
[ii] 자힐리야 시대 시인, 이므룰 까이스(Imru’u al-Qays)의 시에 묘사된 여인과의 정사 장면, 압바스 시대 아부 누와스(’Abu Nuwās)의 시에 그려진 동성애 묘사, 그리고 『하리리 마까마』에서 구걸하는 자가 자신이 조루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성기를 노출하는 장면 등을 들 수 있다. (김정아 2022, p.290)참조.
[iii] Islamweb.net.ar 2010년 9월1일 파트와 참조. https://www.islamweb.net/
[iv] 마까마는 10세기에 나타난 아랍 산문의 한 장르로 사즈으(al-Saj‘)가 주로 사용되었다. 짧은 이야기에 가공의 화자와 주인공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항상 길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사건을 겪으며, 이야기의 플롯에 충실하기 보다는 아랍어 어휘의 수사법을 중시한다. 따라서 내용보다는 형식에 중점을 두었다는 평을 듣는다. 사즈으는 아랍 수사법 중 하나인데, 주로 산문에 사용된 어휘의 대구, 반복 등을 말한다.
참고문헌
- Cachia, Pierre. 2002. Arabic Literature-On Overview, London: Routledge Curzon.
- Goldziher, Ignace. 1966. A Short History of Classical Arabic Literature, Georg Olms Verlagsbuchhandlung Hildesheim.
- A. 니콜슨. 사회만 옮김. 1995. 『아랍 문학사』. 서울: 민음사.
- 김영연. 1996. “한국에 수용된 『천일야화』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김정아. 2015. ”『천일야화』와 『1001개의 거짓말』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중동문제연구 제14권 1호, 203-230.
- ______. 2021. ”이주작가 라피끄 샤미, 경계에서 글쓰기.” 중동연구 제40권1호.217-242.
- _______.2022. ”마까마의 발전: 하리리 『마까마』를 중심으로.” 한국중동학회논총 제43권2호.277-298,
- 윤현호. 2018. “나집 마흐푸즈의 소설 『천일야(千日夜))』의 상호텍스트성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이동은. 2007. “『천일야화』의 신이담 연구.” 한국중동학회논총 제28권1호, 313-346.
- Encyclopedia of Arabic Literature Vol,1(1998), Edited by Julie Scott Meisami and Paul Starkey, Routle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