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사회는 현대표준아랍어를 의미하는 문어체와 각 지역 방언을 일컫는 구어체가 공존하는 독특한 언어현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양층언어현상이라 명명하며, 이 현상에서 문어체 아랍어는 상층 변종(high variety), 그리고 구어체 아랍어는 하층 변종(low variety)으로 간주된다. 코란의 언어가 속한 상층 변종은 이슬람이 도래한 7세기 이후 아랍인들의 종교적 삶을 지배해 왔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순하고 쉬운 언어 변종으로 발전해 온 구어체 아랍어 또한 아랍인들의 일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양층언어현상에서 나타나는 사회언어적 층위는 아랍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사회 계급, 즉 교육의 정도와 사회적 지위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하나의 언어, 특히 현대표준아랍어가 식자층이라는 어느 한 계층의 전유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아랍 사회의 독특한 언어 현상은 언어 교육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중 핵심적인 이슈는 방언을 정규 아랍어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아랍 사회의 언어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문어체와 구어체 아랍어를 동시에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서정민(한국외국어대학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랍과 아랍어는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가? 아랍어를 처음으로 배우는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되면, 보통 ‘아랍은 우리와 지역적, 문화적으로 먼 나라이고, 종교가 그 지역 사람들을 지배하며, 또한 아랍어는 배우고 읽기 어려운 언어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 아랍은 우리와 같은 동양권이 아니라 서양권에 속한다 생각하는 학생들도 다수다. (물론 중동과 극동은 유럽, 더 나아가 서구중심주의 관점에서 생겨난 용어이긴 하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아직도 생소한 지역과 언어가 아랍과 아랍어다.
물론 아랍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먼 지역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특정 종교가 국교로 정해져 있지 않은 우리와 달리 아랍은 이슬람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한글과 반대로 문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문장을 쓰기 때문에 책의 페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긴다. 언어에서의 방향성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1] 한 여성이 조깅을 하다가, [2] 중간에 물을 마신 후, [3] 마지막으로 운동장에 누워서 숨을 고르는 장면이 순서대로, 즉 왼쪽에서 오른쪽순으로 제시된다고 가정해 보자. 아랍인들은 우리와 달리 이 세 장면의 의미를 [3] 한 여성이 운동장에 누워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다가, [2] 중간에 물을 마신 후, [1] 조깅을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와 아랍인들의 문화에는 뚜렷한 차이점도 있으나, 동시에 동양 문화권이라는 공통점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랍의 전통적인 종교 학교에서 도제식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장면은 우리나라의 서당을 연상시키며, 아랍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ḥijāb)은 조선시대 우리 여인들의 장옷을 떠오르게 한다. 더불어, 손님을 환대하고 음식을 권유하는 문화도 우리와 비슷하다. 아랍은 멀고도 생소한 지역이지만, 동시에 정서적·문화적 측면에서 분명히 우리와 공유하는 부분도 있다.
아랍어는 어떤 언어인가?
아랍어는 셈어족의 한 언어로 분류되며,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을 아우르는 레반트(Levant) 지역,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20여개국, 약 3억여명이 사용하는 모국어다. 또한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의 언어로서 전 세계 12억 무슬림들의 종교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유엔(United Nations)의 공식 언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랍어는 역사적으로 시와 소설 등 풍부한 문학적 유산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종교의 도구, 그리고 아랍인들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의 주축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주로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구어로 사용되어 왔던 아랍어는 7세기 이슬람이 도래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 및 이슬람 경전을 글로 표현하는 역할을 해 왔다. 더불어, 약 20여개국의 아랍 국가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은 아랍인들을 하나로 묶는 데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코란의 언어라는 강력한 종교적 역할로 인해 아랍어로 표현하는 글, 즉 문어체는 20여개국이라는 국가수가 무색하게 단일 언어로 고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국가의 지리적·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구어체는 어휘, 발음, 문장구조 면에서 국가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본고에서는 아랍어의 문어체와 구어체가 각각 어떠한 상황에서 사용되는지, 이 두 언어 변종(varieties)이 완전히 다른 언어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구어체와 문어체가 공존하는 언어 현실이 언어 교육에서는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아랍어의 문어체와 구어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랍어의 근간을 이루는 코란의 언어, 즉 문어체 고전아랍어(Classical Arabic)는 7세기 이후 어떠한 변화도 없이 후세에 전해져 왔다. 코란은 신, 즉 알라(’Allah, الله)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므로 단어나 발음 기호, 문장의 배열 등에 어떠한 오류도 없어야 한다. 아랍 무슬림들에게 코란은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므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휘를 단순하게 만든다거나, 혹은 새로운 어휘를 추가한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일반 대중에게 고전아랍어의 문법이나 문장 구조, 어휘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일부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된 언어, 즉 현대표준아랍어(Modern Standard Arabic)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언어 변종이 오늘날 학교에서 교육되는 표준어다. 고전아랍어와 현대표준아랍어의 차이점은 주로 스타일과 어휘에 있으며, 언어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대체로 유사하다. 고전아랍어와 현대표준아랍어 사이의 높은 유사성은 문학적 전통 및 이슬람의 종교 의례 전통에서 엿볼 수 있다. 고전아랍어와 현대표준아랍어는 공히 푸스하(al-fușḥā, الفصحى)라고 명명되며, 이는 ‘가장 깨끗하고 정제된 언어’를 의미한다. 이집트의 언어학자인 바다위(Badawi, 1985)는 고전아랍어를 과거의 유산(al-turāth)을 의미하는 언어로 푸스하 알투라스(fușḥā al-turāth, فصحى التراث), 그리고 현대표준아랍어를 현대성(al– cașr)을 가미한 언어로 푸스하 알아스르(fușḥā al– cașr, فصحى العصر)로 명명하며 고전아랍어를 현대표준아랍어보다 높은 층위에 두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문어체 아랍어라는 용어를 현재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는 현대표준아랍어로 규정한다.
아랍 국가는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준 언어 규범인 표준아랍어와 함께 각 국가별 혹은 지역별로 그 자체의 언어 규범, 즉 구어체 방언(Colloquial Arabic, al- cāmmiyya)을 지니고 있다. 구어체 방언은 지역별(예: 걸프, 레반트 등), 국가별(예: 이집트, 시리아, 모로코 등), 도시별(예: 다마스쿠스, 알레포 등)로 비슷하면서도 상이한 언어적 특징을 보인다. 지리적인 측면, 즉 사막이나 산으로 인한 영토적 장벽, 그리고 각 국가의 다양한 문화 및 사회 계층은 방언이 다양해진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이에 반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공유하고, 상당 부분 비슷한 역사·문화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방언 간에도 상호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문어체 표준아랍어는 공식적인 상황, 문학 작품, 정규 교육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 변종이며, 신문, 서적, 잡지 등 다양한 형태의 인쇄 매체에서 활용된다. 또한 이 변종은 이슬람 사원에서의 설교를 포함한 종교적인 행사, 국회에서의 연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의 대중 연설 및 뉴스 방송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는 아랍 세계에서는 누구든 문어체 및 구어체 형태의 표준아랍어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주제에 대해 사람들과 비공식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준 화법이 없기 때문에 – 아랍인들은 적어도 하나의 구어체(즉, 자신들의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며, 모국어 외의 여타 다양한 방언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랍인들이 태어나면서 사용하게 되는 언어, 즉 자신의 어머니가 말하는 모국어는 구어체 방언이다. 따라서 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지 않게 되면, 문어체 아랍어의 사용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구어체 방언은 문어체 아랍어보다 훨씬 유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가변적인 언어 변종이다. 구어체 방언에서는 손쉽게 단어를 만들고, 외국어 표현을 받아들여 변형시킬 수 있으며, 또한 이 변종은 최신 문화와 관련된 개념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고, 속어(slang)로도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변종은 세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언어의 속성 중에서 창의적, 생산적, 혁신적인 측면을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방언은 아랍 지역의 대다수 대중 문화 매체(예: 영화, 대중가요, 민요)와 재담, 민담, 즉흥 공연 예술에서 사용되는데, 이러한 분야에서 그 자신만의 고유한 형태를 가지고, 언어적 예술성과 독창성을 발전시켜 왔다. 이는 구어체 방언이 문어체 표준어에 비해 보다 대중의 삶에 가깝고, 그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용이한 변종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변종, 즉 고급 문어체의 형태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구어체 방언의 공존을 언어학 용어로 양층언어현상(diglossia, الازدواجية اللغوية)이라고 부른다.
양층언어현상 하에서의 말씨바꿈(code-switching)은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아랍어에 다양한 구어체 방언이 존재한다는 점과 이러한 방언이 문어체 표준어와 공존한다는 점은 아랍 세계의 언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퍼거슨(Ferguson, 1959)은 문어체 아랍어를 상층 변종(high variety), 그리고 구어체 아랍어를 하층 변종(low variety)으로 정의하였다. 퍼거슨의 정의는 현재 아랍인들의 언어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 문어체 아랍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많이 받아 학식이 있는 상위 계층으로 평가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교육받지 못한 하위 계층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이 관점에서만 보자면, 한 사회의 ‘언어’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공평하게 향유하는 수단이 아니라,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배타적으로 소유되는 도구로 인식될 수도 있다.
앞서 기술했듯이, 문어체, 즉 현대표준아랍어에 정통하다는 것은 그 사용자의 명성,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된다. 따라서, 식자층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공식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한 현대표준아랍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학식과 지위를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현대표준아랍어 사용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학교에서의 문어체 아랍어 교육이 아랍인 자신들의 문학적 유산과 역사적 전통을 배우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구어체 방언은 언어적 오염, 혹은 타락과 직결된다고 여긴다. 학교 교육의 경우, 교재의 언어와 교수자의 강의 언어 공히, 원칙적으로 현대표준아랍어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학생들은 가정에서 구어체 방언을 의사소통 언어로 사용하다 보니, 현대표준아랍어를 하나의 외국어처럼 배우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교수자는 수업 시간에 현대표준아랍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구어에서는 방언을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처럼 상대방의 언어 습득 수준에 맞추어 문어체와 구어체를 넘나 들며 발화하는 방식을 말씨바꿈(code-switiching)이라고 한다.
아랍어 방언의 지역적 상이성
말씨바꿈은 현대표준아랍어(격식 언어)와 구어체 방언(비격식 언어)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나, 구어체 방언 간의 대화에서도 생길 수 있다. 방언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가변적이므로 지리적 거리에 비례하여 서로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요르단과 시리아와 같이 이웃한 지역의 방언인 경우에는 화자 간에 서로 쉽게 소통할 수 있으나, 모로코와 쿠웨이트와 같이 거리상으로 먼 지역의 방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 왔으므로 소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다 손쉽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화자 간에 서로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식자층의 원어민 화자들은 각 방언의 특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상대방이 사용하는 방언에 따라 자연스럽게 말씨를 바꿈으로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 이러한 말씨 바꿈은 주로 현대표준아랍어를 학습한 식자층 원어민 화자에게서 주로 목격되는 현상인데, 이는 문어체 아랍어가 구어체 방언과 완벽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문어체 아랍어에 대한 지식이 일상 생활에서의 의사소통에서 기본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현대표준아랍어와 구어체 방언을 혼용하거나, 두 개의 방언을 혼용하는 말씨 바꿈은 아랍 사회의 언어 사용 환경이 매우 복합적임을 의미하며,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상황 하에서 대화 상대의 관점에 맞춰 즉흥적이고도 현명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조정할 수 있다.
말씨바꿈 현상과 관련해서는 바다위(Badawi, 1973)의 이론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학자는 아랍어를 다섯 개의 층위로 나누고, 말씨바꿈 현상을 이 층위들 간의 이동으로 간주한다. 바다위가 제시한 이론에 근거해 언어 변종을 제일 높은 층위부터 각각 순서대로 언급하면, 해당 변종은 [1] 고전아랍어(فصحى التراث) => [2] 현대표준아랍어(فصحى العصر) => [3] 교양 구어체아랍어(عامّيّة المثقّفين) => [4] 표준 구어체아랍어(عامّيّة المتنوّرين) => [5] 문맹인의 구어체아랍어(عامّيّة الأمّيّين)다.
이러한 분류는 아랍 사회의 언어 상황이 단순히 양층언어현상으로 규정될 수 없고, 다수의 변종이 존재하는 다층언어현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식자층 아랍어 원어민 화자는 상대에 따라 하나의 층위에서 다른 층위로 발화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이는 상위 변종과 하위 변종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층위 간의 구별이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대신 층위 간에는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서로 겹침 현상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변종들이 스펙트럼과 같이 연속층을 이루며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에 따라 교양 구어체아랍어를 공통 구어체, 혹은 공식 구어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식자층 화자들이 비공식적인 상황에서 해당 변종을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랍의 사회언어학적 환경을 양층언어현상, 혹은 다층언어현상으로 규정지을 수도 있지만, 아랍을 다중언어사회로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아랍어와 함께 지역 토착어인 베르베르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고,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지배로 인해 영어, 프랑스어가 함께 사용되는 사회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복잡한 언어 현상은 학교에서의 언어 교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양층언어현상이 언어 교육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가?
아랍인들의 언어 현실을 교육에도 반영하려면 아랍어 구어체가 언어 교육 과정(즉, 커리큘럼)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어로서 아랍어를 교수하는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문어체 표준아랍어만 배타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구어체 방언을 교수한다 해도 방언을 개별 과목으로 분리하여 가르치거나, 문어체 아랍어 교육을 어느 정도 마친 후, 구어체 방언을 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학교 교육에서 현대표준아랍어만을 배타적으로 교육하겠다는 신념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랍어를 모국어로 교육하는 아랍 사회 내에서는 말이다.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가정에서 모국어인 구어체 방언을 기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 따로 방언을 교육받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초·중·고 국어 시간에 따로 제주 방언이나 경상 방언을 가르친다면,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 교육을 통한 문어체 아랍어의 교육이다. 따라서, 현대표준아랍어를 수학이나 과학, 혹은 영어처럼 별개의 과목으로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이 적어도 외국어로서 아랍어를 교육(Teaching Arabic as a Foreign Language, TAFL)하는 기관에서는 적용되기 어렵다. 아랍 지역에서는 특수하게 여겨질 정도의 공식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현대표준아랍어로 대화하는 화자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화자들도 신문이나 뉴스를 읽고 시청할 때는 현대표준아랍어를 통해 이해하지만, 이 뉴스에 대해 누군가와 의견을 나눌 때는 거의 본인들이 속한 사회의 방언을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 현실을 고려한다면, 외국어로서 아랍어를 교육하는 기관에서는 현대표준아랍어의 교육과 함께 적어도 한 가지의 방언에 대한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아랍어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인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의사소통 및 언어 숙달 교육(communicative- and proficiency based teaching)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면서 사회언어학적 능력 및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sociolinguistic and intercultural competencies)을 기르기 위한 교육 과정 개발에 매진하였다(Al-Batal, 2018).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방언 교육이 대학 아랍어 교육 과정에 포함되기 시작했으며, 대학에서 아랍어를 교수하고자 하는 사람은 현대표준아랍어의 강의 능력뿐만 아니라, 적어도 한 종류의 방언에 능통해야지만 임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정규 아랍어 교육 과정에 구어체 방언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온 알바탈(Al-Batal)에 따르면, 아랍어 방언 교육은 현대표준아랍어 교육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아랍어 원어민 화자의 언어 교육 방식을 비아랍인들의 언어 교육에 적용하겠다는 신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알바탈은 현대표준아랍어와 아랍어 방언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즉 개별적인 언어 변종으로 보는 대신, ‘아랍어’라는 큰 덩어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본다. 그는 아랍어를 종종 레반트 지역의 샐러드인 탑불레(tabbouleh)에 비유하는데, 이는 아랍어라는 큰 샐러드 하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토마토, 파슬리, 양파, 민트, 레몬즙 등 여러 요소, 즉 현대표준아랍어, 이집트 방언, 레반트 방언 등 여러 언어 변종이 포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그의 주장에서는 아랍어는 문어체와 구어체라는 이분법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언어가 아니라,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언어(Arabic as One Language)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국내 아랍어 교육의 현황을 진단하자면, 교수자 개인에 의해, 혹은 현대표준아랍어와 별개의 과목으로 구어체 아랍어 방언이 산발적으로 교육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현대표준아랍어만 배타적으로 교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랍어 교육에 구어체 방언을 포함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교수자의 신념 및 이데올로기와 연관이 있다. 국내 아랍어 교수자의 경우, 아랍 지역에서 수학하거나, 이러한 지역에서 수학한 교수자들로부터 아랍어를 배운 경우가 대다수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다수 아랍 지역의 원어민 교수자들은 방언 교육을 정규 언어 과정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에 반대한다. 따라서, 국내 교수자들도 자연스럽게 아랍 원어민 화자들의 영향으로 현대표준아랍어의 교육이 곧 아랍어 교육 전체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여 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문어체 표준아랍어는 아랍 20여개국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므로 어느 국가에서나 통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변종의 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설사 방언 교육을 정규 아랍어 교육 과정에 포함시킨다해도 어떤 방언을 교육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대표준아랍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느냐 하는 점에 있다. 국내 아랍어 교육의 역사가 거의 60여년에 이르고 있고, 90년대 이후 의사소통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나,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구어로서의 아랍어 방언
문제는 대부분의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현대표준아랍어 대신 구어체 방언으로 대화하며, 뉴스나 종교 방송을 제외한 다수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서도 구어체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언어 교육에서도 이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방언의 선택 문제에서도 원어민 화자들의 상황을 참고할 수 있다. 원어민 화자들조차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국가의 방언 하나만을 습득하며, 타 지역이나 국가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당 지역이나 국가의 방언을 배우게 된다. 이는 방언 사이에 큰 차이가 없고, 하나의 방언에 능숙하다면 다른 방언의 습득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의 아랍인들 간에도 현대표준아랍어로 대화하기보다는 각자의 방언으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는 현대표준아랍어보다는 지역 방언의 문법이나 문장 구조가 더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아랍어 교육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언의 종류는 대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집트, 레바논, 모로코 지역의 방언을 고려해 볼 수 있으며, 어떤 방언이 선택되어도 무방하다.
국내에서 1~4년간의 아랍어 교육을 받은 후, 아랍 지역에 언어 연수를 가는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방언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학생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의미가 통하기는 하지만, 원어민 화자들에게는 상당히 어색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현대표준아랍어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비가 많이 내렸다는 의미로 “이 곳도 수마가 할퀴고 지나갔군요” 라든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내일 저는 시험에서 기염을 토해야 해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셈이다. 이는 7세기의 언어가 21세기까지 많은 변화 없이 후세에 전해져 왔기 때문에 복잡한 문법,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훈민정음이 반포된 15세기에 사용된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와 같은 표현이 오늘날까지 대화체에서 큰 변화 없이 사용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현대표준아랍어와 구어체 방언을 동시에 교육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랍어 교육의 목표가 아랍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사고하는 데에 있다면, 이러한 목표가 실현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문어체와 구어체의 동시 교육이 어렵다면, 말하기는 문어체로 교육하더라도 듣기는 구어체에 중점을 두어 가르치는 방법도 있다. 의사소통의 기본 원칙은 우선 상대방의 발화를 이해한 후, 그에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즉, 먼저 원어민 화자들의 발화를 이해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아랍어 원어민 화자들은 문어체 아랍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문어체 아랍어로 대화하도록 요청하기는 어렵다.
이제 더 이상 방언 교육을 미루기는 어렵다. 우리 아랍어 교육의 현 상황에서는 현대표준아랍어와 구어체 방언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는 교재, 교육과정의 개발과 함께 이러한 교육을 담당할 교수자의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서정민(jmseo831@hufs.ac.kr)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이자 동 대학 아랍어과 강사이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중동학과에서 아랍어를 강의하였고, 동 대학에서 응용언어학 및 외국어로서의 아랍어 교육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외에도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와 시리아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언어 연수 및 현장 연구(field work)를 수행하였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연구 분야는 아랍어 방언 및 문화 교육, 외국어 능력 평가, 아랍어 교육에 있어서의 통합적 접근법, 교육 과정 설계 및 교재 평가, 교사 재교육 등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Towards Integrating Culture into the Arabic Curriculum: Arabic Teachers’ Beliefs on the Teaching of Culture (2015)”와 『아랍의 봄과 쇼미더머니 수사학: 민중의 저항 언어, 정치인의 설득 언어 (2022)』 등이 있다.
참고문헌
- Al-Batal, Mahmoud. 2018. “Preface”. in Mahmoud Al-Batal, ed. Arabic as One Language: Integrating Dialect in the Arabic Language Curriculum. Washington DC: Georgetown University Press.
- Badawi, El-Said. 1973. Mustawayāt al-cArabiyya al-Mu cāșira fī Mișr. Cairo: Dār al-Ma cārif bi- Mișr.
- Ferguson, Chales A. 1959. “Diglossia”. Word 15(2). 325-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