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여고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치범을 지지하는 글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18년형을 선고받았다고 중동 매체인 ‘미들이스트 모니터’가 보도했다. 사우디의 인권 침해를 보고하는 영국 기반의 인권단체 ALQST도 “마날 알가피리라는 여학생이 SNS에 정치범을 지지하는 트윗을 올렸다가 17세 때 체포됐고, 사우디 전문 형사재판소가 18세가 된 그에게 가혹한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방영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는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한국 언론들은 주로 빈살만 왕세자의 이스라엘과의 관계 및 이란 핵 문제에 대한 견해,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대한 언급 등에 주목했다. 해외 인권단체들은 이 인터뷰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이슈에 주목했다. 게시물을 올렸다가 지난 7월 사형을 선고받은 한 퇴직 교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퇴직 교사인 모하메드 알 감디는 인권 탄압과 부패를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고 유튜브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 판결에 대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쁜 법이지만 법치에 위배되는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휴먼라이츠워치의 조이 셰아 연구원은 빈살만 왕세자 등장 이후 사우디에서 인권 유린이 심각해졌다고 지적하면서, 사우디 검찰이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주요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또한 빈살만 왕세자가 법률에 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수 없다면, 사우디와 주요 안보협정 체결을 고려하는 국가들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여러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정권에 비판적인 온라인 게시물을 올린 이들에게 잇따라 중형이 선고됐다.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30년형을 선고받은 20대 여성 알샤와우르비, 사우디 반체제 인사와 인권운동가를 리트윗하고 팔로한 혐의로 34년형을 선고받은 살마 알셰하브 등 비판적인 게시물을 쓴 사우디 시민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 이들은 ‘테러 범죄를 행할 의도를 갖고 가짜뉴스를 게시하는 것’이라는 대테러법에 따른 범죄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된다. SNS를 통해 후견제도 폐지를 주장하거나 히잡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온라인 활동도 사이버 범죄로 간주돼 처벌받고 있다. 이에 많은 사우디 시민들이 자체 검열을 하거나 가명으로 트윗을 올리지만, 이 같은 행위 역시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언론자유지수를 살펴보면 사우디는 180개국 중 166위이다. 언론 규제가 심하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중동 국가에서 SNS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거나 저항 의사를 공유할 수 있는 유용한 플랫폼이 된다. 하지만 사우디에서는 ‘테러 방지’라는 미명 아래 가혹한 검열과 처벌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게다가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고 안전조치를 강화하지 않는 글로벌 SNS 기업과 인권 문제에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국제사회로 인해 사우디 시민들의 보편적 인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인권은 그 어떤 경제적·정치적 논리로도 짓밟힐 수 없는 핵심 가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