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파 갈등은 어떻게 구현되는가?: 『움미 히싸네 쥐들』 속 갈등과 적의의 언어1)

원문: 다양성+Asia 22호 

쿠웨이트 작가 사우드 알산누시(Sa‘ud al-Sannousi)의 『움미 히싸네 쥐들(Fi’ran Ummi Hissah)』은 2000년대 이후 서아시아에서 고조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이 표출되는 형태를 그려낸다. 특히 종파 갈등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 종파를 적대하고 공격하는 갈등과 적의의 언어로, 이러한 언어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기억의 차이에 근거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언어 사용은 2000년대 이후 서아시아 종파 갈등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양상을 반영한다. 또한 소설은 세대 차이에 따른 종파 관계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종파 간 긴장과 갈등, 상호 적의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백혜원(한국외국어대학교), 황의현(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의 2000년대, 종파 갈등의 수렁에 빠지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차이가 중동 사회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발생한 이라크 정권 교체, 아랍권 민주화 운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과 같은 사건으로 중동 정세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종파 정체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의 원인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Hinnebusch, 2016: 143). 이란과의 갈등 구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왕정은 이란을 견제하고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자국내 시아파의 저항 운동을 고립시키기 위해 수니파와 시아파의 정체성 차이를 강조했고, 이 과정에서 종파 간 상호 불신과 적의가 심화되었다(Al-Rasheed, 2017: 150-152; Mabon, 2018: 51-52).

2011년 2월 집단예배를 드리는 바레인 시아파 시위대
출처: Wikipedia Commons

수니파 왕정과 다수 시아파 사이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난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과 달리 쿠웨이트는 수니파 왕정과 시아파가 상호 협력하며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정세 변화로 촉발된 중동의 종파 갈등은 쿠웨이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이후 수니파와 시아파 모두에서 상대 종파에 적대적인 경향이 나타났다(Wehrey, 2014: 175-188). 사회적으로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종파 간 공존과 화합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종파 정체성을 표현하고 시아파와 수니파를 분명히 구분하는 종파주의적 인식도 나타났다(Fibiger, 2018: 311).

사우드 알사누시의 『움미 히싸네 쥐들』이 출판된 2015년은 바로 이처럼 서아시아에서 종파 간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쿠웨이트에도 그 여파가 미친 시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른 작품이 종파 갈등, 분쟁이 남긴 집단의 비극과 개인의 상처를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움미 히사네 쥐들』은 지금 당장 종파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비극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본고의 주요 목적은 작가가 소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과 분열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본고는 소설에 나타난 주요 모티브와 사건을 분석해 인물들 간의 종파 갈등이 어떻게 점차 심화되고 발전되는지 그 전반적인 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작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갈등 구조를 구체화하는지 소설에 사용된 다양한 서사 기법과 그 의미를 알아본다. 이후 소설 속 인물들이 상대 종파를 ‘우리’와 다르고 화합할 수 없으며 ‘우리’의 적인 ‘타자’로 규정하고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적 담론과 상징들을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기억의 차이라는 맥락 속에서 분석한다.

『움미 히싸네 쥐들』 아랍어판(왼쪽)과 영어판(오른쪽) 표지
종파 갈등이라는 쥐들이 온다사람들을 지켜라

본 소설은 소설의 실제 출판 시점(2015년)을 기준으로 그로부터 5년 뒤인 2020년 ‘현재’에 종파 갈등이 심화되어 내전으로 번진 쿠웨이트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나’는 과거를 회상하며 친구의 할머니인 ‘움미 히싸’의 말을 떠올린다. 움미 히싸는 수니파고 시아파 무장조직의 테러로 남편을 잃었지만, 갈등과 적의는 파멸만을 남길 뿐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움미 히싸는 “불은 그 유산으로 재만 남길 뿐이다”라고 경고하고 종파 간 갈등으로 인해 쿠웨이트가 내전이 발생한 레바논과 스리랑카의 운명을 따라갈지 걱정한다.

종파 갈등에 대한 움미 히싸의 경계심은 쥐와 달걀에 관한 이야기로 비유된다. 움미 히싸는 ‘나’에게 달걀을 지키는 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쥐들이 달걀을 노리고 닭장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 속 쥐는 바로 종파 갈등을 촉발하는 증오, 적의, 불신과 같은 요소를 상징하고, 반대로 닭장과 달걀은 바로 쿠웨이트 사회와 사회 구성원 간의 결속을 뜻한다. 닭장과 달걀을 노리는 쥐를 큰 울음 소리로 경고하는 닭은 종파 갈등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경고하는 사람 또는 의식 있는 새로운 세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병아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나’는 성장해 쥐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어엿한 닭이 된다. 움미 히싸의 영향을 받아 종파 갈등을 경계하게 된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 쿠웨이트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을 따와 ‘푸아다의 아이들’이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푸아다 역시 종파 갈등이라는 역병을 퍼뜨리는 쥐를 경고한 인물이었다.

“당신들에게 경고한다. 쥐들이 오고 있다. 역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라!”

그러나 주인공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무색하게도 소설은 희망적이기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미 쥐는 닭장 속으로 들어왔고 달걀은 깨졌다. 주인공과 함께 ‘푸아다의 아이들’을 결성한 주인공의 친구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말다툼을 하다 결국 폭행에 이르고 ‘푸아다의 아이들’은 해체 위기를 맞는다. 종파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한 부부는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 하산이 어린 나이에 죽는 비극을 경험하고 결국 양가 부모는 이혼하라고 강요한다. 서로 다른 두 종파의 화합으로 탄생해 새로운 희망의 세대를 상징하는 하산의 죽음은 종파 갈등이 그만큼 심각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들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적의와 증오의 언어

『움미 히싸네 쥐들』의 등장인물은 3개 세대로 나뉜다. 1세대는 서로의 믿음과 관행의 차이를 인정하고 화합과 공존을 지향한다 그러나 2세대는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상대 종파를 타자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혐오의 발언과 행위를 멈추지 않는 종파 갈등의 중심 세대로 표현된다. 3세대는 2세대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상대에 대한 적의를 학습해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비운의 현 세대를 상징한다.

소설 속 종파 간 갈등은 적의와 증오의 언어를 주고받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말로 하는 전쟁(harb kalamatiyyah)”로 묘사되는 이 갈등 구도에서 등장인물들은 상대 종파의 교리를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사소하고 작은 차이도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 한 예는 음식에 관한 금기다. 비늘이 없는 생선을 제외한 해산물 대부분을 할랄(halal), 즉 허용된 음식으로 보는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게, 굴, 오징어 등은 금지된 것, 하람(haram)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음식 금기의 차이는 주인공 ‘나’가 2세대 등장인물에 속하는 시아파 등장인물 ‘압바스’를 따라 바다낚시를 가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가 압바스에게 왜 게를 먹지 않느냐고 묻자 압바스는 게는 더러운 것을 먹고 자라기에 금지된 것이라고 답한다. 수니파인 ‘나’는 우리 가족과 수니파 2세대인 살리흐 아저씨의 가족은 게를 먹는다고 하자 압바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희들은 하람이라는 게 뭔지 알고는 있니?!” 살리흐 아저씨가 ‘그들’이라고 말했듯이, 압바스 아저씨도 ‘너희들’이라고 했다. 압바스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수와일리흐에게 가서 나는 너희들처럼 더러운 것은 먹지 않는다고 전해라!”

여기서 주목할 만한 언어적 표현은 바로 ‘너희들’과 ‘그들’이다. 이 표현은 상대방을 자신과 다른 타자라고 선을 긋고 상대방이 한 명의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집단적 대상으로 규정하여 개인의 일을 종파라는 집단의 일로 확대시키고 있다. 결국 이 언어적 표현은 단순해 보이지만 상대방을 집단적 타자로 규정하며 인물 간의 종파 갈등을 심화하는데 일조한다. 또한 압바스가 원래 대상보다 작은 대상을 말할 때 사용하는 아랍어 축소형을 사용해 살리흐라는 이름을 ‘수와일리흐’ 라고 의도적으로 부르는 것은 그에 대한 가치를 낮추고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적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압바스의 공격에 대응해 살리흐는 “그들은 그들 자신이 하람인걸 모르나?!”라고 응수하며 압바스에 대한 비판을 시아파 전체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잘못된 집단이라는 비판으로 확장시킨다.

상대 종파에 대한 적의와 반감은 교육을 통해 2세대에서 3세대로 이어진다. 2세대는 자식들을 서로 다른 종교 기관에 보내 서로 다른 종교 교육을 시키고, 상대 종파가 ‘불신자’ 또는 ‘저주를 받는 대상’이라고 가르친다. 그 결과 3세대도 2세대의 적의를 내면화한다. 수니파 3세대인 파흐드는 시아파들이 ‘예언자를 섬기는 사람(압둘 나비Abd al-Nabi)’,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인)후세인을 모시는 사람(압둘 후세인Abd al-Husayn)’과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을 문제 삼아 시아파가 유일신이 아니라 인간을 신과 같은 존재로 섬기는 불신자들이라고 비난한다. 파흐드는 또한 가게를 갈 때도 가게 주인의 이름이 수니파 이름이 아니라는 이유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등 2세대의 종파적 반감을 깊게 수용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처럼 소설은 등장인물을 여러 세대에 걸쳐 서술함으로써 종파 폭력이 오랫동안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누적되는 적의와 반감의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공격적 종파주의역사가 무기가  

종파 갈등은 물리적 갈등일 뿐만 아니라 언어적 갈등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는 “말로 하는 전쟁”을 벌이며, 주인공 ‘나’는 길거리 담벼락이 언어를 통해 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전쟁의 무대라는 점을 발견한다.

“나와십에게 저주를
라와피드에게 죽음을”

‘나와십’은 수니파, ‘라와피드’는 시아파를 가리킨다. 왜 상대를 수니파와 시아파 대신에 나와십과 라와피드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에서 찾을 수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무함마드 사망 이후 계승 과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Berkey, 2016: 142). 수니파는 무함마드가 죽은 후 올바른 절차와 과정을 거쳐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공동체를 이끌 지도자, 즉 칼리프가 선발되었다고 기억한다. 반대로 시아파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Ali ibn Abi Talib)를 후계자로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함마드의 교우들이 이를 어기고 알리에게 돌아가야 할 후계자 자리를 찬탈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교우들의 합의로 칼리프가 된 아부 바크르(Abu Bakr), 우마르(Umar), 우스만(Uthman)을 ‘올바르게 인도된 칼리프(al-khulafa al-rashidun)’이라고 부르지만, 시아파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국가(IS)의 선전잡지 『다비크Dabiq』 13호
시아파를 ‘라피다(Rafidah)’라고 부르며 시아파는 무슬림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아파가 정통 칼리프를 포함한 무함마드의 교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점은 일부 극단적 수니파가 시아파를 비난하는 이유가 되어 왔으며, 이러한 반감과 적의는 시아파를 비하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인 ‘(무함마드의 교우들을) 부정하는 집단’, 즉 ‘라피다(복수형 라와피드)’라는 표현으로 구현된다. 이에 대응하여 이에 대응하여 시아파가 수니파를 공격하는 언어 표현은 ‘나십(복수형 나와십)’이다. 나십은 본래 이슬람 초기에 알리에 거역한 사람들을 일컫던 말이었지만, 현재에는 수니파를 적대하는 표현으로 주로 사용된다(Husayn, 2021: 8).

‘라피다’와 ‘나십’이라는 비하적 표현은 공격적 종파주의(aggressive sectarianism)가 발현된 형태다. 상대 종파에 대한 공격은 자신이 속한 종파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파나르 핫다드에 따르면 공격적 종파주의는 타 종파를 공격하고 적대하는 방식으로 종파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다(Haddad, 2011; 26). 상대 종파의 핵심적인 상징 체계와 역사적 기억을 공격하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종파 정체성을 표출하는 공격적 종파주의는 특히 종파 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관계 맥락에서 공격적인 정체성 표출은 바로 초기 이슬람 시대에 관한 상대의 역사적 기억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소설 속에서 종파 갈등의 행위자들이 정체성을 표출하는 방식은 핫다드가 제시한 공격적 종파주의에 부합한다. 종파 폭력이 발생한 이후 갈등의 당사자들은 거리 이름에 수니파와 시아파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야지드 이븐 무아위야, 이븐 타이미야, 아부 루으루아와 같은 인물의 이름을 붙였다. 이들이 붙인 거리 이름은 종파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상대 종파의 역사적 기억과 상징을 공격하고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알리의 아들이자 시아파의 3대 이맘인 후세인을 카르발라 전투에서 패배시키고 살해한 우마이야 칼리프조의 2대 칼리프 야지드 빈 무아위야, 시아파를 무슬림이 아닌 불신자로 규정한 법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수니파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시아파를 공격하는 상징이다. 반대로 수니파가 정통 칼리프로 여기는 우마르를 암살한 아부 루으루아는 명백히 수니파에 적대적인 방식으로 시아파 정체성을 표출한다. 이렇게 소설은 공격적 종파주의가 언어로 구현된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대립하는 역사적 기억이 종파 갈등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소설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과 갈등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역사적 기억이 응축된 언어를 활용해 구체화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종파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대 종파의 역사적 기억과 상징을 공격하고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강화함으로써 종파 간 갈등을 조장하는 언어의 사용은 2000년대 이후 중동의 종파 관계에서 나타난 공격적 종파주의를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너희들은 아랍인이 아니다

우리가 아랍 공동체 만세라는 구호를 외치는 동안 몸집이 큰 한 남자아이가 ‘너는 아랍인이 맞니?!’라고 물으며 사디크를 조롱했다. 그 아이는 계속 사디크를 향해 ‘아잠이야!’라고 우겼다.

사디크를 향한 비난인 ‘아잠(ajam)’이라는 표현은 시아파가 순수한 아랍인이 아니라 페르시아계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베두윈의 후손으로서 순수한 아랍인으로서 정체성을 표방하는 걸프 국가에서 페르시아계인 아잠은 곧 진정한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타자다(Cooke, 2014: 60-61). 이러한 맥락에서 사디크를 향한 비난은 종교적 타자일 뿐만 아니라 아랍 민족의 타자로도 규정되는 이중적 타자로서 시아파의 위치를 규정한다.

시아파를 이란에 충성하는 집단으로 의심하는 담론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갈등 구조로 표현되며, 이 구조에서 이란 혁명의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는 수니파가 시아파를 비난하는 주된 근거가 된다. 사디크의 집에 걸린 호메이니의 사진을 구실로 파흐드의 가족이 사디크를 이란을 따르는 ‘타자’로 비난한다. 파흐드의 가족은 사디크가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군을 지지해 사디크를 조롱하고, 파흐드의 아버지 살리흐는 자리를 떠나는 사디크에게 “이리 와서 호메이니에게 인사해라!”라고 외친다. 살리흐의 외침에는 사디크를 쿠웨이트와 아랍 민족에 속하지 않는 타자로 비하하는 인식이 담겨 있다.

1980년대는 아랍 국가와 이란의 갈등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와 결합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1979년에는 호메이니의 주도 아래에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이란에 시아파 정체성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시아파 이슬람주의에 따른 신정국가를 지향하는 정권이 들어섰고, 1980년에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란의 시아파 정권에 대한 아랍 수니파의 두려움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아랍 시아파와 이란 사이에 존재하는 오랜 역사적 관계는 아랍에 대한 시아파의 충성과 시아파의 아랍 정체성을 의심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시아파가 순수한 아랍인이 아니고 이란에 협조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로 추방되기도 했다(Saleh, 2013: 66-69).

소설은 쿠웨이트 외부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정치적 변동이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쿠웨이트의 종파 관계에도 미치는 영향을 그려낸다. 소설에서 이란-이라크 전쟁은 “한 종파를 대표하는 이란, 그에 맞선 다른 종파를 대표하는 이라크”의 종파 전쟁으로 묘사되며, 종파에 따라 각기 다른 국가를 지지하는 등장인물들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과 상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정치적 입장 차이는 종파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 파흐드 가족은 전쟁을 ‘사담의 카디시야’라고 부르는 반면, 사디크 가족에게 전쟁은 ‘신성한 방어전’이다.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승리 기념하는 개선문을 건설하며 “카디시야의 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y_Arch

‘사담의 카디시야’는 1980년대 이라크 바아쓰 정권이 이란-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한 용어다. 바아쓰 정권은 636년 아랍 무슬림 군대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를 무찌른 카디시야 전투라는 역사적 기억을 소환해 이란과의 전쟁을 아랍인의 적 페르시아에 맞서 아랍 민족을 지키기 위한 영웅적 행위로 정당화하고자 했다(Lewental, 2014: 894). 반면 이란은 전쟁을 ‘신성한 방어전’으로 규정해 전쟁이 이라크의 침공에 맞서 이란을 지키기 위한 신성한 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파흐드 가족과 사디크 가족이 이란-이라크 전쟁을 ‘사담의 카디시야’와 ‘신성한 방어전’로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등장인물 사이의 세계관 차이와 갈등 구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담의 카디시야’는 이란을 아랍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란에 우호적인 시아파의 아랍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담론을 상징하고, ‘신성한 방어전’은 이라크와 수니파가 침략자와 침략자를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아래에서 종파 차이는 정치적 차이와 결합되어 언어로 표현되며, 이는 곧 등장인물 사이의 상호 대립과 적의를 강화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수니파가 이라크를 지지하는 것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사디크가 파흐드를 쿠웨이트인이 아니라 이라크인으로 공격하는 명분이 된다. 파흐드에 대한 사디크의 비난은 시아파 또한 이라크와의 관계를 구실로 수니파를 쿠웨이트라는 국민국가의 타자로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핫다드가 지적하듯이 종파 간 갈등은 국민국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아랍 국민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에 관한 갈등이다(Haddad, 22). 소설은 ‘아잠’과 ‘이라크인’이라는 타자화하는 언어적 표현을 통해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종파 차이 외에도 아랍 민족으로서의 정체성, 쿠웨이트의 진정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도 관련된 갈등임을 드러낸다.

 

작은 차이가 생사를 가를 

수니파와 시아파는 갈등 또는 공존이라는 한 단어로는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맺어 왔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정체성 차이는 무함마드 이후 이슬람권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로서 존재했지만, 종파 관계의 양상은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해 왔다. 2000년대 이후 종파 갈등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변하지 않는 적대감의 필연적인 산물이 아니다. 종파 갈등은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어 이라크 정권 교체, 이란의 영향력 확대, 아랍권 민주화 운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신냉전 구도 등 중동의 정세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격화되었다.

종파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은 외부의 변화지만, 종파 갈등이 촉발된 상황에서 사용되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는 역사적 기억은 갈등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란과 시아파 사이의 오랜 관계라는 역사적 배경 또한 아랍 국가와 이란의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수니파가 시아파를 타자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움미 히싸네 쥐들』 속 등장인물들이 상대를 비난하고 적대하고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는 이처럼 잠재된 갈등의 원인이 실체화된 형태다.

『움미 히싸네 쥐들』의 등장인물들은 음식 금기, 이름과 같은 극히 사소하게 보이는 차이로 인해 갈등하고 서로를 비난한다. 차이 그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갈등이 촉발된 이후에는 그 차이는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된다.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집단을 구분하는 사소한 차이가 큰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이라크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종파에 속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일도 발생했기에 사람들은 이름을 종파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다. 닭이 지키지 않으면 쥐들이 닭장에 구멍을 낼 수 있다. 아무리 작더라도 닭장에 구멍이 난다면 쥐들이 파고 들어와 역병을 옮긴다. 수우드 앗산누시는 『움미 히싸네 쥐들』을 통해 잠재되어 있는 작은 차이가 언제든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게 경계하는 예리한 눈이 필요하다는 점을 경고한다.

 

저자 소개

백혜원(smjez@daum.net)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와 융합인재대학 아랍어통번역세부모듈 강사, 아랍어 통번역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와 같은 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아과를 졸업하고 요르단대학교에서 아랍문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의 『형상, 성상, 그리고 구약』(2016)과 쿠웨이트 작가 사우드 알사누시의 『대나무가 자라는 땅』(2019)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황의현(katib@snu.ac.kr)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무기가 되는 과정을 연구해 중동지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중동 종파 관계, 정체성 정치, 역사적 기억의 정치적 수단화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1) 이 글은 저자들이 발표한 논문 「종파 갈등과 타자화의 서사적, 언어적 표현 연구: 『움미 히싸네 쥐들』을 중심으로」를 토대로 작성되었음

 


참고문헌

  • Al-Rasheed, Madawi. 2017. “Sectarianism As Counter-Revolution: Saudi Responses to the Arab Spring.” in Nader Hashemi and Danny Postel, ed. Sectarianization: Mapping the New Politics of the Middle East, 143-158.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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