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플랫 [구기연 교수, 이란에는 “이미 세상을 다 알고있는” 10대 여성들이 있다]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란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는 지난해 9월13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붙잡혀 3일 뒤 석연찮게 숨졌다. 이란 정부는 그가 구타당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으나, 아미니의 죽음은 오랜 강압 통치에 지친 이란 시민들에게 저항의 불길을 댕겼다. 이란 안팎에서 삭발을 하고 히잡을 불태우는 연대 시위가 일어났으며,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과 청소년도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위 장소도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았다.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잠시 소강 상태에 빠진 시위는 아미니 사망 1주기인 16일을 앞두고 다시금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의 시위와 저항은 무엇을 남겼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시위는 아미니 사후 몇달 동안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었다. 그러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히잡 시위는 이란 정권이 민중을 두려워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최근 오히려 강화된 히잡법은 “체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정권의 불안과 공포가 커졌음을 방증한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이란에는 “이미 세상을 다 알고 있는” 10대 여성들이 있다고 구 교수는 강조했다. 이들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K팝 등 외국 문화를 받아들인 세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찢고 학교에 ‘낙서 테러’를 하는 10대 소녀들을 보면서 오히려 기성 세대가 용기를 얻었다고 구 교수는 전했다.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는 이란 시민들이 있는 한 정권의 탄압에도 희망의 불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위의 핵, ‘젊은 이란 여성’은 누구
– 최근 이란 내 시위 동향이나 규모는 어떤가.
“사실 많이 잠잠해졌다. 지난 연말까지 시위 참가자 500여명이 사망하고, 일부는 사형집행까지 당했으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주동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잡혀가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들어보면 수도 테헤란이나 도시에서 히잡을 안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눈에 띈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전히 쓰고 있으니까 변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없다. 시위 전에는 히잡을 쓰지 않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 앞에서도 히잡을 벗고 다니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이지만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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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생명, 자유’가 시위의 대표 구호였다.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구호의 기원은 옛 쿠르드 독립운동이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혁명을 할 수 없다’며 독립운동의 한 분야로서 여성 권리 향상을 주창했던 것이다. 그런만큼 그 구호에는 ‘여성’뿐 아니라 생명과 자유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담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이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 이란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여성, 생명, 자유’라는 뜻이다. ‘숨쉬면서 살고 싶다’, ‘인간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다. 이번 히잡 시위는 이전 시위들과 달리 농촌과 도시,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이란인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 이번 시위 이전부터 이란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꾸준히 저항의 게시물을 올려오곤 했다.
“이란 출신 기자인 마시 알리자네드가 2014년 ‘카메라는 나의 무기’ ‘내 비밀스런 자유’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히잡 벗은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자 많은 여성들이 동참했다. 초창기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나 뒷모습이 올라왔지만 점점 더 과감해졌다. 이전까지 히잡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었던 이란 여성들은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비로소 ‘히잡 강제에 반대하는 이들, 용기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이버 페미니즘 운동이 지속됐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히잡 시위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히잡 시위에서 가장 눈에 띈 건 10~20대 젊은 이란 여성들의 힘이었다. 이들에게는 어떤 세대적 특징이 있나.
“이란 당국을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이 바로 이 10대 여학생들이다. 여학생들이 하메네이 사진을 끌어내리고 교과서를 찢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학교에 낙서를 하도 많이 해서 부모들이 페인트값을 물어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냉소주의와 정치 무관심에 빠졌던 기성세대가 오히려 이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10대 여학생들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에 태어나 시장 개방을 경험한 세대다. 그래서 이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차이가 특히 크다. 몸은 남녀 분리와 히잡 강요가 있는 이슬람 세계에 속해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10대, 20대가 누리는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실제 삶은 연애도 하고 싶고 아이돌도 좋아하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다. BTS 공연과 블랙핑크의 댄스를 본 아이들더러 ‘히잡 똑바로 쓰라’, ‘정숙한 이슬람 여성으로 시선을 낮추라’고 교육하니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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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더 옥죄는 단속…1주기 앞두고 삼엄한 분위기
– 그럼에도 이란 정권이 ‘히잡 의무 착용’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이란 내에 사회적 불만이 꽉 차있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히잡 자유화’라는 틈을 주면 정권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클 것이다. 히잡은 이란의 이슬람식 통치를 상징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을 일으키면서 ‘무함마드의 시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전세계에 이를 알릴 수 있는 가시적인 방법이 여성에게 히잡을 씌우는 것이었다. 히잡이 본연의 종교적 의미를 잃고 정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 패착이다. 재미있는 것이 비행기가 이란 상공을 벗어나자마자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벗는다. 자율적으로 뒀더라면 쓸 사람은 쓰고 안 쓸 사람은 안 썼을 텐데 말이다.”
– 최근 나온 히잡법 초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국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히잡 미착용 처벌 수위를 강화했다는 평가가 있다.
“(저항의) 목소리에 대한 두려움이다. 히잡 시위는 이란 정권이 민중의 힘을 두려워하는 계기가 됐다. 단순히 여성을 억압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심한 통제와 처벌을 고안한다는 것 자체가 ‘제한을 이 정도로 높이지 않으면 언제 또 치고 올라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내포한다. 시민운동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기 위해 사람들을 겁주려는 취지지만, 실은 정권의 두려움을 방증한다. 폐쇄회로(CC)TV 단속을 늘린 것 또한 시민들의 저항 때문에 면대면 단속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88)가 연로해 후계 구도를 고심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터진다면 과연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둘러싼 논란도 내부적으로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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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니 1주기를 앞둔 분위기는 어떤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망자의 사후 40일과 1년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아미니 사후 40일에도 시위가 크게 일어났다. 이번에도 쿠르드 지역에서 시위를 준비하고 있고, 1주기 당일에는 어떤 형태로든 소요 사태가 일어나리라 본다. 지금 이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심지어는 1주기 시위대를 잡아들이기 위해 정부가 교도소를 미리 비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 현 국면의 출구는 무엇이라고 보나.
“한동안은 긴장감이 이어지고, 정권으로서도 다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전술을 세울 것이다. 신정일치 이란에서는 정치 비판이 곧 종교 비판이다. 비판을 하면 신을 배반하는 행위처럼 되다 보니 무언가를 정치적으로 비판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1979년 이란인들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울 때 내걸었던 구호 역시 ‘자유’였던 것처럼, 이란의 자유가 퇴색하지 않도록 희망이 주어지길 바란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