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다양성+Asia (21호)

유대인들은 1948년 건국 직후부터 주변 아랍 국가들과 그 너머의 무슬림들로부터의 고립과 적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랍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고 최근에 와서는 UAE를 기반으로 아랍 내에서 입지를 마련해가고 있다. 이글은 아랍국가들의 불문율이던 반이스라엘의 장벽을 유대인들이 돌파하게 된 과정과 그 조력자들을 살펴보고, 이와 같은 노선이 지속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유대인들의 진출은 먼저 국시로 관용과 다문화를 내세운 UAE의 다종교 정책에 편승했고, 가톨릭을 대표하는 교황청과 순니 무슬림을 대표하는 이집트의 종교기구 아즈하르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평화 화해책에 크게 힘입었다. 또한 트럼프와 이스라엘 및 걸프 아랍 국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미국-아랍-이스라엘의 반이란 동맹의 결성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우에 대한 외면 역시 이 모두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JCPOA재추진, 이스라엘 내정의 혼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기존의 정책 추진을 지연시키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희생을 대가로 한 이 구도는 피해자의 반발뿐만 아니라 아랍 민중의 정서를 감안해서라도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정진한(한국외대)

유대인들팔레스타인을 넘어 아라비아반도에 진출할  있을까?

2023년 2월, 중동에서 처음 유대교 회당과 기독교 성당, 이슬람의 모스크를 모은 다종교 시설 아브라함 가족의 집(Abrahamic Family House)에서 유대인 결혼식이 최초로 열렸다. 이 성혼에 세계의 유대인들은 환호했고, 중동의 여러 국가들은 이를 축복하거나 낙담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이 첫 커플의 신랑이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아비 버코위츠(Avi Berkowitz)로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은 한동안 언론의 주목에서 벗어나 있던 2020년의 아브라함 협정과 이를 주도한 트럼프의 이름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JN Reporter 2023).

아브라함 가족의 집 모형을 살펴보는 제라드 쿠슈너 전 백악관 수석고문
출처: Wikipedia Commons

종교시설을 모은 아브라함 가족의 집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의 수교인 아브라함 협정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 바로 중동에서의 세 유일신교도들의 공존과 평화, 즉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정착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것이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이 1993년 이후 정체되어 있던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수교가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2019년 아라비아반도를 처음 밟은 교황과 이슬람 세계의 대표적 종교기구이자 학술기관인 이집트의 아즈하르의 대이맘이 서약한 종교간 화합과 협력을 상징하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두 사건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격렬한 무력충돌이 수반되었고,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냐는 비판론부터 이러한 지도층의 결정을 민중과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공존은 가능한 것인가? 91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이 아라비아반도에 상륙했을 때 이를 수용하기 힘들어했던 무슬림들은 과연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 너머 아랍의 심장부에 진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날로 커지고 있는 UAE 내의 유대인 커뮤니티와 국제 네트워크를 추적하며 이 질문에 답하는 한편, 이 사태를 통해 중동이 다시 시오니스트와 다신교도들까지 공존하는, 과거 바그다드처럼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문명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에 관한 가능성과 난관 및 그 극복 방안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시오니스트들과의 거래 금지가 불문율이던 시절

시오니즘(Zionism)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서에 따라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19세기에 체계적으로 조직된 이 운동에 따라 주로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은 중동을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의 장악력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서서히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시도했다. 그리고 2차대전기 홀로코스트를 계기로 그 이주가 폭증하면서 원주민 팔레스타인들과 갈등을 빚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오스만에서 영국으로, 이후 UN로 관리자가 바뀌는 동안에 밀려들어온 유대인들과 보금자리를 두고 다투다 결국 1948년 전쟁을 통해 영토 절반을 상실하고 밀려난다. 1967년 전쟁으로 남은 땅을 모조리 상실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거나 유대인들의 통제 아래에서 생활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출산율이 높은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자신들보다 많아져 선거에서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결국 팔레스타인 일부를 분리시켜 아랍인 대부분을 이스라엘 선거에서 배제시켰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형식상 독립국 지위를 획득했지만 국방이나 외교 등 높은 수준의 자치는 커녕 무역이나 수자원 관리와 같은 기본적 국가 운영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불구 국가의 시민으로 다시금 전락했다.

19억 이슬람 세계 전역의 무슬림들에게 수백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핍박은 일종의 형제에 대한 인종차별로 규정되었고, 특히 이웃한 아랍 국가들은 수차례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생존을 걸고 물러설 수 없던 갈등을 벌이던 양측은 결국 팔레스타인의 희생 아래에 현실적인 평화를 선택했다. 먼저1976년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대통령이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선 아래에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수상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1993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의장과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수상이 평화협정을 맺었다. 사다트와 베긴과 카터, 아라파트와 라빈 모두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정작 유대인과 무슬림 대다수는 이 결정을 따를 수 없었고, 사다트와 라빈은 각각 자국민에 의해 암살당했다.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에서부터 수단까지 대다수의 무슬림 국가들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탄압하는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에서 자국의 여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이스라엘 여권 소지자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중동 내 안정적 정착은 요원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충돌하며 양측 관계는 나빠져만 갔다.

이스라엘에서만 여권이 무효함을 명시한 문구 (파키스탄 여권)
출처: 저자 촬영

2005년 분리 장벽의 완성은 이스라엘의 치안과 안보에는 획기적 진전이었지만 무슬림들의 가슴에는 이스라엘이 더욱 악마화 된 표상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아랍 국가 대부분과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시오니스트 국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대원칙을 불문율로 세웠다. 이러한 상황은 9/11 테러와 이란 핵문제, 아랍의 봄을 거치며 더욱 꼬여갔다.

 

미국 민주당중동의 신뢰와 민심을 잃다.

9/11테러를 기점으로 다수의 서구인들은 무슬림 전체를 백안시하였다. 이로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적극적으로 중재하고자 하는 외부 동력 역시 급속히 약화되었다. 많은 중재안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면서 1993년 이후에 추가로 이스라엘과 아랍이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은 시들어만 갔고 평화 중재 회담의 계속된 실패로 당사자들과 주변인들 모두 지쳐갔다.

2010년대 아랍의 봄을 거치며 미국의 민주당은 아랍 세계의 신뢰와 국제사회에서의 명분을 잃어갔다. 미국은 중동의 군부정권과의 유착관계를 배신하고 혁명세력을 지원했지만, 정작 왕정은 보호하고 지원했다.  또 시리아의 아사드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레드 라인을 넘으면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무기력하게 철군했다. 오히려 도처에서 벌어진 내전의 수습에는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등이 더 큰 공헌을 했다.

한편 이란 이슬람 혁명과 이란 정권의 핵개발은 중동 내 순니파와 쉬아파의 대치를 고착화했다. 1950년대부터 미국과 함께 핵을 개발하던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반미 국가의 선봉에 섰다. 1994년 북한과 공동으로 핵개발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란은 냉전 종식으로 무너진 공산주의를 대체해 미국의 새로운 주적이 되어 불량국가 리스트에 올랐다. 이라크와 북한의 핵개발에 참여하던 이란은 2011년 국내에 원전을 건설하며 국제 제재와 핵협상이라는 긴 마라톤을 시작했다.

2015년 오바마 정부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라는 다자간 협력기구를 출범시켜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만들려 했지만 이란은 “이스라엘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도 포기하겠다.”라는 성사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며 협상 가능성을 떨어뜨렸다. 과거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기지를 폭격한 이스라엘 공군은 이제 이란을 폭격하게 해 달라고 미국에 졸라 댔다. 그리고 핵무장을 한 쉬아파 대국을 코앞에 마주한 아랍 국가는 이란이 아니면 그 어떤 원수와도 손잡을 준비가 되었다.

리더십이 상처를 입고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어떻게든 이란 핵협상을 끌고 나갔지만 결국 임기 내에 이를 완수하지 못한 채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트럼프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중동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지지부진하고 불확실한 이란 핵협상 대신에 반이란 국가들끼리 연합을 구성해 이란을 최대 한도로 밀어붙이는 전략이었다. 궁지에 몰린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 그리고 트럼프가 제공하는 확실한 인센티브가 절실했던 몇몇 아랍국가들이 이에 동참했다.

 

발상의 전환시오니스트의 진출이 아닌 아브라함교도들의 평화와 공존

트럼프는 투 트랙, 즉 JCPOA 파기로 이란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이란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해 힘을 모을 안보 파트너로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참여시켰다. 이때 트럼프는 이슬람 권의 격렬한 반발이 불보듯 뻔한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중동에 평화를 정착한다는 매력적인 모토를 내걸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패키징했다.

아브라함 협정 체결식
출처: Wikipedia Commons

이후 아브라함 종교간의 평화라는 제하에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간의 순차적 평화 조약체결 시리즈[i]가 전적으로 트럼프에 의해 기획, 구성, 진행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UAE와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 종교지도자들이 먼저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트럼프는 이를 확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UAE 전대통령의 자문 압둘 칼리끄 압둘라(Dr. Abdul Khaliq Abdulla) 박사는 2021년 제주평화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해서 UAE가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앞서 최소 10년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민감한 이슈가 격렬한 논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연성외교, 즉 종교인과 문화시설, 문화행사 등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구상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히 민간문화시설과 국제문화교류를 활용한 공공 외교의 역할이 컸다.

UAE, 중동의 다문화 국가 선봉에 서다

중동 최초의 엑스포인 두바이 EXPO 2020의 미국관, 이스라엘관, 푸르산(기회) 광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영화인 “아멘-아멘-아멘 (אָמֵן-Amen-أمين”이 상영되었다. 유대인들이 아부다비 왕에게 토라를 헌정하는 역사적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이 영상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세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하나님께 간절한 소원을 비는 소리 아멘을 히브리어, 영어, 아랍어로 따서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아랍, 이스라엘, 미국의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이 토라가 무슬림 군주에게 바쳐진 최초의 토라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며 이 역사적 사건을 축복했다. 유대인들은 또한 UAE가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포용하다는 점을 여러 번 천명한 UAE의 창립 군주 쉐이크 자이드에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유대인의 억압이 강해질수록 아랍 내 유대인들에 대한 시선은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관용을 베풀던 쉐이크 자이드는 마치 바빌론에서 유대인에게 자유를 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처럼 여겨졌다.

2015년 UAE는 여러 아랍국에서 금지된 유대인들의 토라 두루마리 휴대를 허락했다. 대를 이은 군주들의 시혜에 보답하고자 UAE 유대인들은 초대 국왕을 기리는 토라 두루마리를 왕세자에게 헌상하기 위해 국제 유대인 네트워크를 조직해 제작에 착수했다. 이 기획은 2018년 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아부다비를 방문한 패널들에게 공개되었고, 토마스 L. 갤러거(Thomas L. Gallagher)가 이를 기록할 다큐멘터리의 총제작자 역할을 맡았다.

토라 두루마리와 보관함은 이스라엘에서 특별 제작된 뒤 미국 뉴욕으로 옮겨져 마지막 손질을 거쳤다. 완성된 두루마리는 기도와 가무 의식으로 축복을 받고 UAE로 운반되어 2019년 당시 왕세자였던 현 국왕 쉐이크 무함마드에게 헌상되었다. 그 여정과 관련한 다양한 인터뷰는 고스란히 영상으로 기록되어 당시까지 중동에서 개최된 가장 크고 국제적인 행사였던 두바이 EXPO 2020에서 “아멘-아멘-아멘”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다.

이를 통해UAE는 2020년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이 외부에서 폄하하듯 그저 최근에 와서 국익 차원의 계산에서 급조된 것이 아니라 창건 군주의 국시를 따라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이라는 점을 만방에 증명했다. 다큐멘터리는 또한 건국 초기 쉐이크 자이드가 세 일신교가 모두가 하나님을 받들고 있으며, 그 외의 종교들을 믿는 이들 마저 포함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강조하는 연설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다큐멘터리는 UAE가 가진 근본적인 경쟁력이 관용과 포용성임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을 억압했지만 무슬림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대체로 유대인과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역사관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들끼리 화목하게 지낼 시기가 도래했으며 UAE가 그 화해의 시작이자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내비쳤다(정진한, 2022a). 이와 같은 유대인과 무슬림의 화해 노력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초대형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가톨릭의 본산 교황청과 이슬람의 대표적 기관 아즈하르가 주도하는 유일신교의 국제적인 이벤트가 열린 것이다.

 

교황과 이맘이 손잡은 평화 종교의 전당으로 발전하기까지

무슬림 국가 각지에서 종교간 화합과 비폭력을 전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이2019년 2월 3일UAE에 도착했다. 마침 UAE가 관용의 해로 지정한 2019년에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이슬람의 발상지 아라비아반도를 방문한 교황은 사흘간 가톨릭과 이슬람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역사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도착 다음날 교황은 종교간 교류를 위해 국제회의에 모인 다수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종교 간 평화와 협력에 관해 연설했다.

연설 후 교황은 순니 이슬람 종교계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원로인 아즈하르의 대이맘 쉐이크 아흐마드 알타입(Sheikh Ahmad al-Tayyib)과 함께 ‘세계 평화와 함께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공동선언문(Document on Human Fraternity for World Peace and Living Together, 약칭 인간의 형제애 공동선언)’을 조인했다. 다음 날에 교황은 13만 5,000명이 모여 UAE 역사상 사상 최대의 미사를 집전했고,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폼페이오는 교황의 방문과 미사 집전이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평화와 이해를 증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Pompeo, 2019).

국무부 장관 폼페이오의 트위터 게시글
출처: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캡쳐

2019년 8월 15일 이 구상안을 집행할 ‘인간의 형제애 고등위원회(Higher Committee of Human Fraternity, 이하 HCHF)’가 발족했다. 7인의 위원들 중 다섯 명은 종교계가, 두 명은 UAE 문화관광부와 언론계 인사로 구성되었다. 8월 19일 뉴욕에서 열린 위원회 회담에서 압둘라 빈 자이드 UAE 외교 및 국제 협력부 장관은 기독교와 이슬람뿐만 아니라 유대교까지 아우르는 유일신교도들을 위한 종교시설, 즉 아브라함 가족의 집 구상안을 발표했다.

 

아브라함 협정아랍세계 전역에 진출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공식 선언

트럼프가 주선한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잇따른 수교는 이 아브라함 가족 간의 화해라는 수사에 더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평생을 통해 익숙해진 그의 거래 방식대로 트럼프는 외교마저도 피아를 명확히 나누고 포섭이 필요한 대상에게는 꼭 필요한 당근을 제시했지만 행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게는 무지비하게 굴었다.

먼저 국내외 반대를 무릅쓰고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그리고 2020년 9월 UAE와 바레인, 이스라엘을 워싱턴으로 불러 한꺼번에 수교하는 ‘아브라함 협정’의 역사적인 조인식을 성사시켰다. 10월에는 수단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하며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주선했다. 재선 직전 불가능에 가까웠던 이 모든 협약을 성사시킨 트럼프는 일약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선에 실패하면서 오바마의 JCPOA가 그랬듯 교체될 정권의 정책은 지속될 수 없었다. 임기 종료 직전인 12월 그는 서사하라(Sahara Occidental)의 영유권을 인정해주며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가능하게 했지만, 진행중이던 오만과 이스라엘의 수교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국 민주당이 다시 한번 이란을 품으려 하자 아브라함 평화 시리즈의 주역인 걸프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반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AE와 이스라엘의 협력관계 및 유대인들의 UAE 진출은 한층 더 활성화되었다.

 

문명들의 교차로 박물관의 변신과 유대 기구들의 본격적인 UAE 진출

민감한 정치외교 교류에 앞서 UAE는 보다 부드럽고 저항감이 적은 문화외교, 특히 민간 시설을 통한 공공외교를 적극 활용했다. UAE 국가평의회원이자 다수의 박물관과 정책연구소를 설립한 아흐마드 알만수리(Ahmad al-Mansoori)가 2014년에 설립한 두바이의 사설 박물관, ‘문명들의 교차로 박물관’가 그 대표격이다. 두바이가 문명간 가교 역할을 했던 역사적 문화 강국이었음을 보여주고자 한 이 박물관은 개관 직후 걸프협력회의(GCC)사무총장 상을 수상했다. 2020년 전에는 이 박물관은 두바이의 역사성과 중동지역의 역사, 그리고 세계 문명들 사이의 교류에 기여한 인물과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전시했다.

하지만 아브라함 협정 이후 이 박물관은 아랍과 유대 간의 평화적 공존을 선전하는 대표 기구이자 양자 간의 만남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먼저 일부 유대인 테마의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물게 공식어로 아랍어와 영어 안내문에 히브리어를 병기하고 가상 방문(virtual visiting) 프로그램에도 히브리어 안내문과 설명을 포함시켰다.

같은해 12월 6일 박물관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유대 문화유산 센터(Heritage Center for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Jewry)와 양해각서(MoU)가 체결했다. 두바이 통치자가 설립한 국제관용연구소(IIT)와 UAE 유대인 위원회를 비롯한 UAE와 이스라엘의 정부 기구들이 공식적으로 후원 및 협력한 체결식에는 양국 관료와 학계 및 종교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대위원회와 등과 같은 세계 각지의 관련 기구 대표들이 참석해 흡사 UAE와 세계 유대인 간의 공식 협정을 방불케 했다

또 아랍 최초의 홀로코스트관을 개장하면서 전체 전시실의 절반(홀로코스트관, 다종교관, 성지관)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유대 역사와 문화 관련 전시물과 스토리로 채웠고, 야외 전시에도 아랍인과 유대인들의 화합을 주제로 한 벽화, 구조물과 그림 및 상징물이 설치되었다. 이 박물관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UAE에 방문할 때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정진한, 2022b).

문명들의 교차로 박물관에 있는 유일의 벽화[ii]
출처: 저자 촬영

또 이 박물관은 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온 무슬림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아랍-이스라엘 화해에 대한 당위성을 역사적 기억과 미래 비전을 잘 섞어 교육하는 현장으로도 기능했다.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교류는 점차 역사적 공존의 기억을 현실로 구현할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

2022년 3월 2일 미국의 대표적인 유대 권익 단체 미국유대인위원회(AJC, American Jewish Committee)가 아랍 최초의 사무소를 아부다비에 열었다. 개소 직전인 2021년 12월, AJC 간부들은 갓 수교했거나 수교를 추진중인 국가들을 일주일 만에 순방하는 빡빡한 일정 중간에 이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29일,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을 도왔던 무슬림 의인들을 기념하는 홀로코스트 전시관에는 홀로코스트 와중에서 지켜낸 체코의 토라 두루마리를 전시해 이 곳이 역내 유대인들의 중심시설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보름 뒤인 2월 16일, 브라함 가족의 집이 개관했다(Shakhshir, 2023).

 

아브라함 가족의 집에서 다신교와 무신론자마저 포용하는 코즈모폴리탄으로

이제 UAE는 종교적으로 가까운 일신교를 넘어서 중동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신교 시설들마저 포용하려 한다. 컨트리이코노미닷컴(Countryeconomy.com)의 조사에서는 1995년 UAE 인구 중 96%가 무슬림, 2.52%가 기독교도, 1.48%가 기타 종교 신도였으며 무신론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0년 같은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무슬림이 67.48%로 대폭 줄어든 반면 기독교도는 7.14%로 늘었다. 한편 다신교도인 힌두교도는 22.05%로 폭증했고, 무신론자라고 밝힌 응답자도 처음 등장해 전체 응답자 중 1.46%를 차지했다.[1]

UAE의 공식 종교가 이슬람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비일신교 계통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은 아브라함 협정보다 더 혁신적인 현상이다. 본디 이슬람은 같은 중동 지역에서 시작된 유일신교, 즉 유대교와 기독교와 오랫동안 훨씬 더 밀접하게 공존했고 또 교리적으로도 이들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같은 성서의 종교’로 분류해 여타 종교보다 명백히 우대했다. 반면 유대교와 기독교 외의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강하게 개종을 요구했고 종교 시설 역시 더욱 광범위하게 파괴되었다.

따라서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은 다신교 종교시설의 설치에 소극적이었고, 이는 국내 인구의 대다수를 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걸프지역 국가들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하지만 UAE는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35만여 스리랑카인을 비롯해 약 50만 명에 달하는 불교도들을 위해 마하메브나워 선원(Mahamevnawa Buddhist Monastery)을 세웠고, 겨우 5만여 명에 불과한 시크교도들을 위한 시크교 사원인 구루드와라 건설 또한 승인했다.

인도와의 협력이 증진됨에 따라 UAE는 1958년에 부르 두바이에 세워진 오래된 힌두교 사원에 더해 2022년 자발 알리 빌리지에 두번째 사원을 건설했다. 또 2015년 모디 총리의 방문 회담에서 아부다비 교외에 초대형 힌두 사원의 건립을 추진키로 하고 현재 공사중이다(Manoj, 2015). 특히 두번째 모스크가 있는 자발 알리 빌리지는 힌두교와 시크교 사원 외에도 7개의 다른 기독교 종파가 모인 글로벌한 다종교 지구 밀집구역이다.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희생을 딛고 올라선 공존의 UAE, 지속 가능한가?

하지만 이와 같은 비전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주요 행위자들의 공조가 전보다 원활하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바이든의 민주당 정권은 트럼프 시절만큼 중동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 그는 누구보다 협조가 필요한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MBS)을 카쇼끄지 기자 암살의 배후로 지목한 후 미국-사우디 협상에서 MBS를 배제하고 살만 사우디 국왕을 만났다.

바이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 이후 폭등하는 유가를 잡기 위해 뒤늦게 MBS를 찾아와 주먹 인사를 건냈다. 회담 후 돌아가는 길에 바이든은 MBS의 협조를 받아냈다고 공언했으나 MBS는 보란 듯 이를 부인해 바이든의 체면을 구겼다. 심지어 바이든은 그가 트럼프의 제재로부터 구해주려 했던 이란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사실 이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대립하는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함에 따라 JCPOA 부활을 위한 유럽의 협조를 받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오랜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최근의 히잡 시위로 정세 위기를 겪는 이란과, 네옴 시티와 엑스포 유치 등 비전2030을 실현하기 위한 정세 안정이 필요했던 사우디는 통상의 중재자 미국 대신 중국을 내세워 화해했다. 이로서 사우디는 기존처럼 예멘의 후티 반군에 의한 기간 시설물이나 군 시설의 공격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이란은 성난 민심을 달래고 재제 해제를 극렬 반대했던 사우디라는 큰 걸림돌을 치워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 역시 예전만 못하다. 이란 핵에 가장 민감한 이스라엘 언론은 최근 들어 거의 매일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겠다고 선동하고, 본토 공격에 앞서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시리아 등지에 있는 이란 군기지를 공습하고 요인들을 암살하며 이란을 자극하고 있다. 더군다나 네타냐후 총리가 범죄 연루 의혹을 받는 가운데 비민주적인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극히 손상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내세운 여러 극우인사들을 연정에 참여시키면서 인권도 챙겨야 하는 미국 민주당과의 거리가 멀어져만 가고 있다.

또한 아랍 민심의 동향 또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아랍 정부와의 동맹관계를 단단히 갖춰 나갈수록 보다 거칠 것 없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책을 펼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잊혀가던 팔레스타인의 존재감은 아브라함 협정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포격전을 통해 재부상하였고, 이런 패턴의 풍선 효과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협력으로 팔레스타인의 고립이 심화될 수록 더 자주 격렬하게 반복될 수 밖에 없다.

2020년 카타르의 사회정치 연구 기관인 아랍정책연구소(Arab Center for Research and Policy Studies)가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중 88%가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대해 반대했고 단 6%만이 찬성했다.[2] UAE가 경제 성장과 국가 안정의 원인으로 다문화 다종교 정책의 성공을 내세워 국민 다수를 설득해낸다고 해도, 적지 않은 국민들과 인근 국가들의 무슬림들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들과의 형제애라는 아랍과 이슬람의 대의를 저버린 정책을 마냥 찬성하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와 그 파트너들이 추진했던 이란을 봉쇄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방치하는 방식으로 인해 UAE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아랍에 진출할 길을 열어주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아랍-이슬람 세계를 화해시킨다는 목표는 항구적이고 안정적으로 달성되기 어렵다. 현 시점에야 UAE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이 사이 좋게 공존하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으로 기능할지 몰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동정하는 민중의 불만이 어디선가 쌓이고 터질 듯한 분노가 쌓인 이웃 이란을 포함해 주변 아랍국과 이슬람 국가에서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출렁인다면 그간의 평화책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기왕에 UAE가 21세기판 코즈모폴리탄 이슬람 국가를 다시 세워보고자 한다면, 또 유대인들이 꼭 아랍 땅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다면, 다같이 작당해 따돌리고 있는 이웃인 이란과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웃인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들을 동정하는 이웃들과도 함께 평화와 공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들 역시 아브라함이 낳은 자신들의 이복 형제들이 아닌가!

 

저자소개

정진한(zynai@hanmail.net)은
한국외국어대 강사이다. 런던대학교 SOAS (동양아프라카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등에서 연구와 강의 활동을 했다. 주로 이슬람 문명교류사, 한-이슬람 교류사, 한국의 이슬람 세계 진출 및 문화 협력 전략, 문명교류학과 실크로드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에 관한 다수의 논저를 출간하였다.

 


[1] Countryeconomy.com. “United Arab Emirates – Religions.” https://countryeconomy.com/demography/religions/united-arab-emirates (검색일: 2023.06.10.)

[2] Arab Center Washington DC. 2020. “Arab Public Opinion toward Normalization with Israel” https://arabcenterdc.org/resource/the-2019–2020-arab-opinion-index-main-results-in-brief (검색일: 2023.6.10.)

[i] 미 국무부 중동국은 홈페이지는 최상단에 개별 외교 사안으로는 유일하게 아브라함 협정 섹션을 단독 배정하고, 그 선언문과 4개의 협정의 원문을 게시했다. 각 협정문 전문을 살펴보면 UAE, 바레인, 수단은 모두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제목을 사용했지만 모로코는 모로코, 미국, 이스라엘 간의 공동 성명이라고만 명시했다.

[ii] 홀로코스트관 출구를 마주보는 곳에 설치된 이 벽화에는 아랍 전통 복장을 입은 남성이 캐쥬얼 복장을 입은 남성과 어깨동무를 한 채 두바이 시내와 바다를 배경으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웃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벽화 좌상단에는 이스라엘과 UAE 깃발이 대각선으로 엇갈려 있고, 오른쪽에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Cousins meet up”을 표기해 두바이에서 아랍인과 유대인들이 사촌지간으로써 화목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참고문헌

  • 정진한. 2022a. “미국 건국의 아버지의 꾸란, EXPO 2020 미국 전시관에 자리하다.” GCC Issue Paper 40, 8-11.
  • 정진한. 2022b. “민간 박물관을 활용한 아랍에미리트의 친이스라엘 공공외교: 문명들의 교차로 박물관의 사례를 중심으로.” 『 중동문제연구 』 21권 2호, 107-138.
  • Abrahamic family house. “About-us” https://www.abrahamicfamilyhouse.ae/about-us (검색일: 2023.6.10.)
  • Bushar Shakhshir. 2023. “UAE museum unveils Torah scroll that survived the Holocaust in tolerance push.” https://www.reuters.com/world/middle-east/uae-museum-unveils-torah-scroll-that-survived-holocaust-tolerance-push-2023-01-29/ (검색일: 2023.6.10.)
  • JN Reporter, 2023. “First Jewish wedding held at Abrahamic Family House in UAE”
  • https://www.jewishnews.co.uk/first-jewish-wedding-held-at-abrahamic-family-house-in-uae/ (검색일: 2023.6.10.)
  • Manoj. C. G. 2015 “UAE takes a ‘landmark’ decision, allots land for building first temple in Abu Dhabi” https://indianexpress.com/article/india/india-others/uae-takes-a-landmark-decision-allots-land-for-buliding-first-temple-in-abu-dhabi/  (검색일: 2023.6.10.)
  • S. Department of State. “Abraham Accords” https://www.state.gov/the-abraham-accords/(검색일: 2023.6.10.)